[오늘의 설교] 삶의 변화
고린도전서 11장 1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증가만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과거 답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5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언변과 지식은 풍족했지만 삶의 변화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습니다. 신앙의 지식이 지식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신앙 지식의 풍족함은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삶의 실천은 많으면 많을수록 축복이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말만 무성한 것으로 인해 분파가 발생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하면 지식도 충만하고 모자람이 없었지만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삶과 생각, 말이 변화되기를 원하였고, 그 지식까지 거듭나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솜씨는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의 구변이 아닌 삶의 변화를 본받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자기를 변화시키고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하는 능력으로 삶이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 삶이 변화되지 못하였습니다(마 23:2∼3). 그래서 예수님은 가르치는 자의 비극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 사도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닮기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사명,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닮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현재 우리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향기가 우리의 삶에 나타납니다. 예수님 사랑에 앞서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 가운데 예수님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신앙의 본질은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 사랑을 삶으로 고백합시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경배하며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그때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섭시다.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환경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견고히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말만 많은 교회가 아니라 삶의 실력이 있는 교회로 만듭시다.
우리 교회는 변화된 직장생활, 변화된 삶의 모습을 지역사회에 메시지로 던지는 건강한 교회로 만듭시다. 교회 최후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메시지가 되어 우리가 받은 말씀을 삶으로 옮겨놓는 참 신앙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선용 목사(성환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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