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어떤 호스피스
요 몇 년 새 일본에선 ‘핀·핀·고로리’란 말이 유행이다. 앞 글자를 따서 ‘PPK’라고 부르는데 ‘핀·핀’은 팔팔한 모습, ‘고로리’는 맥없이 무너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성어다. ‘평소 팔팔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는 뜻이다.
‘핀·핀·고로리 법칙’ ‘PPK의 영양학’ ‘PPK 체조’ 등 팔팔한 노년을 위한 지침서가 서점마다 넘친다. 그런데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전 도쿄대 교수는 저서 ‘나 홀로의 노후’(2007)에서 일본의 PPK 열풍이 나이 드는 것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라고 비판한다. 장애가 죄가 아니듯 늙음도 그 자체로서 존귀한 인생의 한 때인데 왜 애써 감추려 드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고통 없는 갑작스런 죽음을 선호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1∼2일 앓은 후 사흘째 죽음을 맞는다는 뜻의 ‘9988·123’이 주변에서 농반진반으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열흘 전 돌아가신 장인어른도 긴 병치레 없이 가시기를 원했다. 3년 전 전립선암을 선고받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 돌아가시기 2주 전부터 병세가 급격하게 위중해졌다. 병원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당신 내외의 의지 그리고 세 자녀의 동의 하에 호스피스(말기 환자 간병)가 시작됐다.
통증이 그리 심하지만 않다면 살던 집에서 마지막을 맞는 편이 좋으리라는 의사의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통증의 크기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첫 주는 그렇듯 가족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보냈고 당신 역시 아직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둘째 주로 넘어갈 무렵, 미국에 유학 중인 손녀와 어렵게 전화를 하면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거라, 끝까지. 그리고 기도해라, 포기하지 말고.” 손녀에게 보낸 덕담인지 당신의 의지 표시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날 이후 표정은 퍽 평온해졌다. 그리고 며칠 후 가족 찬송이 이어지는 속에서 눈을 감았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 호스피스도 종료됐다.
내일이면 추석이다. 먼저 가신 조상님들을 비롯해 앞서 보낸 부모, 형제 등을 기리는 민족의 대명절이다. 어떤 모습으로 생사의 이별을 했든 다시 한 번 고인을 떠올리는 순간을 맞는다. 삶과 죽음이 별개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맞닿아 있음을 실감한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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