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세월을 뛰어넘은 바람의 전언… 송은일의 신작 장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Է:2012-09-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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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세월을 뛰어넘은 바람의 전언… 송은일의 신작 장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작자 미상의 시이다. “나의 묘지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어요∼”

소설가 송은일(49)씨가 신작 장편의 제목을 ‘천 개의 바람이 되어’(예담)로 붙인 것은 이 시가 소설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환인(還人·return-people)’이라는 하나의 전제를 깔고 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구 가운데 100분의 1이 회귀를 겪는데, 회귀를 겪는 인간 중 90%는 자신의 회귀를 의식하지 못하지만 나머지 10%는 자신의 회귀가 전생의 기억들과 연결돼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환인이다.

송은일이 ‘환인’으로라도 다시 태어나게 해, 못 다한 꿈을 이루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들은 개화기 인 1896년 태어나 ‘신여성’이라고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세 여인 김명순, 나혜석, 김원주이다. 이들은 열에 아홉 이상의 여자들이 문맹이던 시절에 독립운동을 하고, 맹렬히 글을 쓰고,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스러져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제도처럼 견고했던 시대, 글은 곧 말이므로 그들의 글쓰기는 제도와 세태와 인습과의 전투였다.

이들이 환인으로 다시 태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소설은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다. 개화기 여성 김명순은 소설에서 김부전으로 등장하는데 그의 환인은 신예작가 유아리이다. 나혜석은 나유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의 환인은 살인범을 추적하는 특수경찰청 소속 형사 재엽이다. 또 김원주의 분신이라 할 환인은 신문기자 해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 사이를 오가며 숱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입양아 출신 조각가 로즈 밀러이다. 예컨대 이들은 언젠가 한 번쯤 살아본 것 같은 기시감을 매순간 느끼는 영혼의 탐색자여서 상대방이 누구의 환인인지를 한눈에 알아본다. “재엽은 한 손으로 아리의 두 손을 그러잡고 당겨 안는다. 아리가 스스럼없이 안겨오며 한숨처럼 속삭인다. 유석아! 재엽은 아리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준다. 아리의 손도 그의 등을 다독인다. 서로를 다독이는 사이 백년의 시간이 둘 사이에서 사라진다.”(62쪽)

유아리의 소설을 모방한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재엽은 유아리에게 끌린 나머지 결혼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아리와의 쌍둥이 환인, 즉 트윈 리턴 피플로 여겨지는 로즈 밀러가 나타나면서 소설은 살인 사건을 동반한 추리극을 방불케 한다. “그들이 어느 시점까지 한 영혼이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아리와 로즈는 빛과 그림자로 나누어져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각기 빛과 그림자를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밝기로 따진다면 유아리의 빛은 100촉쯤으로 밝고 따뜻해 그 그림자도 선명했다. 로즈의 빛은 5촉쯤이나 될까. 그 빛은 너무 여려 그림자 만들기도 버거울 듯했다.”(205쪽)

소설 말미에서 로즈 마리는 유아리를 납치하지만 재엽이 아내를 구한다는 해피 앤딩이야말로 개화기 당시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랑마저 놓치고만 신여성들에게 바치는 송은일 식 귀결이다. ‘미완인 채로 끝나버린 운명의 단서를 붙들어라!’ 송은일이 이 가을에 던지는 메시지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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