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시간이동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송가에 유행인가 보다. 과거와 미래,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으니 참 매력적인 이야깃거리이긴 하다. 주인공들은 무한한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역사책의 행간에 감춰진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 조선으로, 고려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칼에 베인 노국 공주를 살리기도 하고 최영 장군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의 나래는 거기까지다. 노국 공주가 순산하고 오래오래 행복했다고 쓸 수도 없고 공민왕과 우달치 최영이 고려 재건에 성공했다고 쓸 수도 없다. 우리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탓일까. 가끔씩 진짜로 시간 이동이 가능해져서 우리 역사를 좀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도 문제에서 위안부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해 속 시끄러운 요즘 같으면, 경술국치의 그날부터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이 불편한 이웃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을 역사 속의 그 누군가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내가 만나고 싶은 그 누군가는 소현세자다. 적장자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인조의 견제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세자. 그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와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뛰어난 외교관이었고 서양의 선진문명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한 열린 지식인이었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 서양의 역학과 과학, 종교 등을 접한 것이 1644년. 그때 소현세자는 조선에 돌아가면 서양문물을 도입하고 서양 과학서적을 출판하겠노라 약속했다. 무력이 아닌 지식의 힘으로 약소국 조선을 자주국가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인 1872년. 일본의 메이지정부가 번역국을 설치하고 서양고전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서적을 번역, 출판하는 일을 시작한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일본은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4년 후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켰고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만약 소현세자가 살아서 조선의 17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일본보다 200여년 앞서 스스로 나라의 문호를 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꿈이 역사가 되었다면 우리는 달라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을까.
과거를 바꿔 달라진 현재를 살 수는 없지만 현재를 바꿔 다른 미래를 살 수는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만약’이라는 역사의 가정법이 다른 미래를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될 수는 있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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