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독도 지킴이 안용복

Է:2012-09-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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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토인 울릉도에 조선 사람이 갔는데, 억류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숙종 때인 1693년 3월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안용복은 일본 어부들과 조업권을 놓고 티격태격하다 일본으로 끌려간 뒤 태수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인질이었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막부(幕府)가 써 준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鬱陵島非日本界)’라는 문서를 받아들고 9개월여 만에 부산 왜관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조선 조정으로부터 그가 받은 것은 훈장이 아니라 곤장 100대였다. 허가 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은 것이다.

헛수고만은 아니었다. 조선 조정이 이듬해 일본 측과 울릉도·독도의 영유권 및 어업권을 놓고 협상에 나섰다. 그 결과 1696년 막부로부터 울릉도·독도는 조선 영토이며, 이 지역에서 일본 어민들의 어업활동을 금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그는 그해 일본이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울릉도로 갔다. 거기서 여전히 조업 중인 일본 어민들을 발견하고 그대로 일본으로 가 왜 월경했는지를 따졌다. 그리고 5개월여 만에 송환됐다. 이번에는 유배형이라는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 이후 숨질 때까지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가 유배지로 떠난 뒤 독도 인근 바다에서 일본 어부들은 자취를 감췄다. 안용복이 국토를 수호한 영웅호걸로 평가받고, 지금도 독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회자되고 있는 이면에는 이런 역사가 존재한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생떼가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라는 가당치 않은 일을 꾸미더니 최근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독도의 한·일 공동관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서 다소 후퇴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발언이다.

반면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에는 고분고분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자는 목소리도 없다. 중국 내에서는 반일 시위가 지속되고 있으나, 일본인들의 반중 시위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갈등 완화를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했으나 중국 측의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를 장기판의 졸(卒) 쯤으로 여기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안용복이 살아 있다면 일본으로 건너가 무례와 오만함을 질타하며 담판을 지었을 듯하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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