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십자가를 잃어버린 교회
마태복음 4장 19절
“나름대로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데 왜 열매가 잘 맺혀지지 않는 것일까요?”, “주일학교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마음만큼 잘 변화되지 않아요.”
요즘 교회를 방문하면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곤 합니다. 열심히 안하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고 실천한 만큼 열매가 잘 맺혀지지 않기 때문에 털어 놓는 푸념입니다. 이런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은 답답한 현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탁월한 방법과 프로그램, 그리고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물론 이 시대에 맞는 복음전파 방법과 프로그램, 기술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점검해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위의 푸념들은 교회가 담당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로서의 전도, 그리고 죄로 고장난 사람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일로서의 사역. 이 전도와 사역이 교회가 본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방법과 수단부터 고쳐보려 하지 말고 무엇이 잘못돼 안 되는 것인지 본질이라는 원칙을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미션을 먼저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오라”는 미션을 먼저 주셨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는 자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사람을 낚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 낚는 일은 방법과 기술로도 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먼저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걸어가신 생명의 길을 같이 따라 걸어갈 때 생명의 영향력으로 사람을 붙이고 살리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좁지만 생명이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지만 생명의 길입니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낚을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인 거장들이 걸어갔던 길이 이 길이었고, 그 결과 주변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회복과 신앙적 성장을 위해 십자가를 찾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진리가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진리와 균형을 잃어버린 이유도 십자가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사람 낚는 일에만 몰두하던 그 열정을 갖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 예수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좁지만 생명력 있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은 십자가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하도균 목사 (서울신학대 전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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