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28절
금년 여름에는 폭염과 장마, 그리고 한반도보다 직경이 더 큰 크기의 태풍이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이 가을에 소리 없이 익어가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지나가던 새벽에 거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매우 구슬프게 들렸습니다. 대자연의 균형이 깨져 어찌할 바를 몰라 신음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향한 저항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큰 소리를 내는 거대한 힘 앞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곧잘 큰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왕상 19:11). ‘소리가 이긴지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다름 아닌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치는 군중의 소리였습니다(눅 23:23). 모두가 자신이 내는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아파서 지르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자연의 아픔이든 인간의 아픔이든 치료하는 능력이 있어 바람과 바다를 치료하여 조용하게 저지하셨고(마 8:27),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 때문에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가나안 여인의 문제도 약간의 대화를 거쳐 말끔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소리로 대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자들마저도 여인의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돌려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자기 소리는 높이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큰 소리는 듣기 부담스러워하는 법이죠.
주님은 치료와 열매 맺는 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가나안 여인을 표본으로 정하신 듯합니다. 이방인은 상대하지 않겠다고 무시하는 충격요법으로 시작하십니다. 가나안 여인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약품 선전문구가 생각납니다. 미세한 가루로 되어 있기에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부스러기에 비유하며 자신의 존재를 낮춥니다. 이때 비로소 주님은 응답하셨고 그의 딸이 치료됩니다.
소통의 도구가 수없이 개발되는 것은 소통이 그만큼 힘든 세상임을 방증합니다. 각자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좀처럼 생각이 모아지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융합(fusion)이나 수렴(convergence)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것을 하나하나 소리 없이 모아가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연예술의 장르가 무너지고 있고, 학문도 문과 이과 등 학제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안에 전화, PC, MP3, TV, 전자책, 내비게이션, 게임기, 카메라, 캠코더 등 많은 기계들이 수렴됩니다. 이른바 잡종시대, 잡종의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잡종’은 회색분자 같고, 순수하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천한 것이라고 여기던 단어였으니 이 또한 낮아짐의 의미로 와 닿습니다.
열매가 익는다는 것은 융합의 과정인가 봅니다. 내 생각만을 고집하며 소리를 높이기보다는 각기 다른 생각을 수렴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소리 없이 공통분모를 찾아갈 때 거리마다 기쁨으로 춤을 추며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홍삼열 순천 한소망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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