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버려라, 그래야 소통한다… 하일지 장편소설 ‘손님‘

Է:2012-09-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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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버려라, 그래야 소통한다… 하일지 장편소설 ‘손님‘

영화감독 홍상수가 쪽대본으로 그날그날 촬영할 부분을 즉흥적으로 해나가듯, 소설가 하일지(57) 역시 소설을 쓸 때 사전 구상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떠오르면 거기에 이어 둘째 줄을 쓰고, 둘째 줄에 이어 셋째 줄을 쓰는 방식이다.

신작 장편 ‘손님’(민음사) 역시 그런 방식으로 쓰였다. “해거름 녘에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허표의 동생 허도는 고욤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대체 저 모자 쓴 사람이 오늘 밤 어느 집에서 잘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9쪽)

소설은 낯선 ‘손님’이 하원 마을로 불쑥 찾아들면서 시작된다. 외국인인 그는 춤 선생 허순을 찾아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 저 한쿡 사람 아닙니다. 외국 사람입니다. 한쿡말 잘 못해요.”(11쪽)

하일지가 놓은 즉흥성의 첫 징검돌은 ‘손님’이 우리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얼마 전 허순이 하원여중고 무용반 학생들을 데리고 무용대회 참석차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서울에서 ‘손님’을 만난 것이다. 허순의 아파트에서 손님과 허순과 무용반 학생들은 재회하고 학생들은 ‘손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떤다.

두 번째 징검돌은 ‘개고기’다. 허순이 개고기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통역을 맡은 여학생 채령은 손님에게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속이고, 손님은 개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식사를 마친 허순은 계산서를 손님에게 내밀지만 손님은 흔쾌히 모든 음식값을 계산한다.

다음 장소는 마을 어귀 석촌호. 손님이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며 석촌호로 뛰어들 때 속옷 바람으로 물속에 뛰어든 여학생은 유나였다. 그리고 작별의 순간이 왔을 때 손님은 허도에게 100만원을 쥐여 주며 “개고기 사 먹어”라고 한국말로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은 내 형제며, 우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허도는 너무 놀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때 허순은 손님에게 왜 동생 허도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에게는 돈을 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며 따진다. 그러자 손님은 허순에게도 돈을 쥐어주며 “당신은 내 어머니를 닮았어요”라고 한국말로 말하지만 허순 또한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손님은 과연 누구였을까. 손님을 떠나보낸 후 유나는 “손님과 함께 달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손님이 ‘양고기 맛있었어’라고 정확한 한국말로 말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한국말로 나눴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저씨가 한국말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렇게 콩닥거렸던 가슴이 슈 아저씨가 한국말을 하자 왜 갑자기 잠잠하게 가라앉았나 하는 거야.”(227쪽)

유나의 독백은 하일지가 놓은 즉흥성의 마지막 징검돌이다. ‘손님’이란 우리 안에 깃든, 타인에 대한 무시와 하대의 태도가 아닐까. 내 아집의 눈 때문에 남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일지 문학은 독자들에게 어떠한 진실도 강요하지 않지만 치밀하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묘사(징검돌)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잠들어 있는 의식을 일깨운다. 하일지는 ‘감각의 갱신’을 통해 우리 삶의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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