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선엽] ‘양날의 검’ 황금사자상

Է:2012-09-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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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김선엽] ‘양날의 검’ 황금사자상

“주류에 발 들여놓은 김기덕 감독… 영화계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

사회생활을 제법 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주 듣게 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력 있는 사람이 ‘빽’(든든한 배경) 있는 사람 못 이기고, 빽 있는 사람이 운 좋은 사람 못 이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공의 3대 요소를 다 갖추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이런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대단한 일이 생겼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실력과 재능에 대해선 건너뛰자. 18편에 이르는 개성 강한 필모그래피와 화려한 수상경력을 고려할 때, 그가 ‘준비된 후보’였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에 있어 실력만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3대 국제영화제(칸, 베를린 포함)도 예외는 아니다. 내로라하는 거장 감독들이 다 모여드는 곳 아니던가.

게다가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영화적 취향이나 공감도, 감독들과의 친분 정도(자주 만나 대화하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등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일부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한국영화에 냉정했던 마르코 뮐러에서 김 감독의 영화세계에 호의적이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로 교체된 것, 베니스영화제 자체가 칸과 베를린영화제에 밀려 화제작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했던 상황을 환기해보라. 김 감독에게 ‘배경’과 ‘운’까지 따랐던 천우신조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이 하필이면 한국영화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김 감독이라는 사실은 그 의미가 남다르고 더 축하할 만한 일이다. 특히 수상 소식 직후 집 근처 극장에서 확인한 풍경은 ‘피에타’ 그 자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과거엔, 월요일 낮 시간에 소위 예술영화를 보러 가면 필시 관객은 필자 혼자거나 많아야 다섯 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작은 영화관의 반 정도가 차 있었고 관객의 대다수는 놀랍게도 중년 부인들이나 노년의 커플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선 연민으로 혀를 차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내가 목격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신기루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문득 밀려왔다. 요 며칠 새 한국영화계의 현실과 제도는 바뀐 게 없을 뿐 아니라(예: ‘피에타’의 상영 횟수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상 받았다고 갑자기 주요 언론매체를 비롯한 사회 전체가 김 감독의 특별함에 일사불란하게 찬사를 보내는 현상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피에타’ 개봉을 앞두고 김 감독이 파격적인 행보를 한 것부터가 심상치는 않았다. 주류영화만을 쫓는 한국영화계에 노골적으로 환멸감을 표시하며 칩거했던 그였다. 한데 출국 전 각 방송사의 대표적인 인기 프로그램에 배우들과 함께 출연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속내를 꺼내 보이며 대중과의 소통에 매진했다. 수상 후엔 관객과 언론뿐 아니라 사회의 높으신 분들, 지명도 있는 분들의 축하와 덕담도 줄을 이었다. 덕분에 김 감독은 더 이상 절대고독에 시달리며 열정 하나로 버티는 비주류라고 투정하기 힘든 자리에 올라섰다. 그는 반문할지 모른다. 앞으로도 자신의 영화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갈 텐데 무슨 소리냐고.

하지만 사회학자 브루디외에 따르면 돈뿐 아니라 문화자본과 사회자본도 자본이다. 즉 18편의 영화를 통해 구축한 그의 영화 내공, 그런 영화인으로서의 자격을 공인해주는 영화계에서는 세계 최고 대학의 학위에 상응하는 황금사자상, 이젠 다른 분야의 어떤 엘리트도 무시할 수 없는 명성을 토대로 급속히 확장하며 공고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인적 네트워크는, 이제 그가 싫든 좋든 주류세계에 한 발 걸쳤음을 확증하는 지표들이다.

그래서 불안해진다. 잃을 게 없었던 그가 영화계의 또 다른 ‘영악한’ 기득권층으로 변질돼 가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위선보다는 차라리 ‘불편한 솔직함’을 택했던 그를 그리워하는 시절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선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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