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한주] 손상된 사람들

Է:2012-09-0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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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곽한주] 손상된 사람들

최근 흉악한 성폭행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다. 인면수심의 성폭행범을 거세하라느니, 사형에 처하라느니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얼마나 치를 떨었으면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마는 이런 처방은 분노를 표출하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처벌과 격리 중심의 처방은 문제를 개인의 악행 차원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해결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고, 문제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범죄자가 태어날 때부터 악마의 씨를 품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여느 아기처럼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인간으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 없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는 괴물 같은 인간으로 변했다. 그러므로 문제를 풀려면 이들의 삶의 과정을, 그 과정에서 형성된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삶 배우지 못해

상습적 성폭행,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더불어 살 줄 모른다. 이들은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고립된 외톨이로 지내온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본래부터 ‘더불어 살기’를 거부했을까.

우리는 남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더불어 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복잡다단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더불어 살려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선천적으로 갖고 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따뜻한 엄마 품과 주변의 배려 등 우호적인 환경과 소통과 사랑의 경험에 의해 서서히 개발되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흉악범들은 습득할 기회를 갖지 못해 더불어 사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불어 사는 삶으로부터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본래부터 사람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심리학자들은 남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거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성장과정에서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 경우 아이는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안정된 자아를 발달시키지 못한다. 이는 정서불안과 자존감 결여, 주변에 대한 적대감 등 부정적 결과를 빚는다. 남들과 더불어 사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겉으론 멀쩡해도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손상된 사람들’이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유기와 박탈의 경험을 접하면서 공감, 배려, 사랑의 방법을 배우지 못한 불행한 이들이다. 달리 말하면 가정, 학교, 직장, 사회로부터 정상적인 성장과 생활을 저해당해 더불어 사는 삶으로부터 떠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불어 살기에 서툴거나 아예 기피한다.

우리 사회의 실패 돌아봐야

마음이 손상된 사람 모두가 반사회적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자신 몫의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 안길 엄마 품이 있었다면, 포근했던 엄마 품의 기억이라도 온전했다면 이들은 아마 손상된 마음을 품고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따사로운 주변의 보살핌이나 자상한 상담의 기회라도 있었다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채 사회를 적대하는 일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이들을 손상된 사람으로 키운 것이 우리 가정, 학교, 사회라는 사실에 눈 감을 때, 또 다른 아이들이 절망과 불안 속에서 괴물로 자라날 것이다. 반사회적 범죄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실패인 것이다.

곽한주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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