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⑩ 무전유죄론] 건강한 중산층이 많아야

Է:2012-09-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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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이순신-⑩ 무전유죄론] 건강한 중산층이 많아야

‘OOO푸어(Poor)’, 가난이 넘친다.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스펙푸어, 에듀푸어 등등 계속 늘어가고 있다. 또 묻지마 범죄, 성폭력 범죄들도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푸어와 범죄가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순신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순신이 왕명 거부죄로 백의종군할 때 쓴 일기에는 “백전(百錢)의 돈이면 죽은 혼도 살아날 수 있게 만든다(1597년 5월 21일)”는 ‘전등신화’를 인용한 글이 나온다. 부자는 죄를 지어도 감옥에 가지 않고 또 쉽게 풀려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가난과 불공정, 부정의가 갈등과 파괴의 시작이고 범죄의 온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백성과 군사들의 살림살이를 살피고 굶주림을 면하도록 온 열정을 쏟아 부었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알려진 것처럼 정말로 가난했을까? 그의 집안은 6대조 이변 때부터 확실한 명문가였다. 이변은 세종 이래 6명의 임금을 모시며 최고의 대명 외교전문가로 활약했다.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의 요직은 물론 예문관 대제학까지 역임했다. 고조부는 정4품 고위관리였고, 증조부는 연산군이 세자였을 때 스승, 병조참의를 지냈다. 조부는 음덕으로 관리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도 종5품의 관리였다.

이순신의 집안은 현고조 이변 이후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명문 관료집안이었다. 재산 면에서도 결코 몰락했거나 가난하지 않았다. 그 증거의 하나가 모친 초계 변씨가 이순신의 형 이요신이 생원시에 합격했을 때, 이순신이 무과 급제 했을 때 기념으로 각각 증여한 기록이다. 이순신은 ‘솔거 노비 2구와 전라도 영광·나주·흥양, 평안도 영변에 각각 사는 외거노비 5구, 충청도 은진에 사는 노비가 바친 집과 전답’을 받았다. 전국 곳곳에 재산이 있었던 중산층 이상이었다.

이순신의 삶이 보여주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중산층, 나눔을 실천하는 건강한 중산층이 많아야 사회와 나라가 튼튼해진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강력한 법 집행에 의한 사회안전망 강화는 땜질식 처방일 뿐이다. 이순신이 했던 것처럼 국민들이 이런저런 ‘푸어’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근원적인 처방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그가 늘 했던 것처럼 예외 없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집행을 해야 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인해 생기는 분노 범죄를 막는 길이다.

박종평(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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