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수 한 분이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섭섭한 마음으로 찾아뵈니 평생 사용하시던 연구실을 떠나기 위해 짐을 정리하다가 조용히 일어서며 “책을 구분하고 있소. 도서관에 기증할 책,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책, 그리고 집으로 가져갈 책으로…. 김 교수도 책을 골라보오. 오래되어 쓸 만한 책도 없소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차 한 잔을 나누며 하신 말씀이다. “방을 비워주려고 짐을 정리하니 이제야 인생을 알 듯하오, 은퇴하려고 연구실을 비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마시게.”
교수님은 ‘통합(integration)’이라는 주제의 고별강의에서 노년기를 ‘통합’과 ‘절망’의 양극개념으로 설명한 에릭슨(E Erikson)을 소개하면서 ‘절망(despair)’ 하기가 싫어서 의식과 무의식, 마음과 몸, 나와 너, 하늘과 세상 그리고 웨슬리와 칼빈마저도 통합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명예교수로 추대 받고 학교를 떠나셨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올해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했다. 712만명 중 47만명이나 퇴직한단다. 이들의 은퇴 후 기대수명이 30∼40년이라는데, 회자되는 말처럼 장수시대가 축복만은 아닌 듯싶다.
성서적인 시간 개념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된다. 크로노스는 육신으로 태어난 첫 사람의 수평적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거듭난 둘째 사람의 시간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수직적 시간이다. 은퇴는 의미심장한 카이로스가 아닐 수 없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의 새들러(W A Sadler) 박사는 인생의 4단계를 10대와 20대 전반부의 ‘퍼스트 에이지(first age)’, 가정과 직장을 이루어 정착하는 20대 후반과 30대의 ‘세컨드 에이지(second age)’ 그리고 생활을 위한 40대 이후 30년의 ‘서드 에이지(third age)’, 마지막으로 노화하는 ‘포스 에이지(fourth age)’로 구분한다.
옛날 방식대로 살아보니 젊음이…
그는 1세기 전 ‘틴 에이지(teen age) 세대’가 등장한 것처럼, 현대사회가 장수시대가 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세대 ‘서드 에이지’가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서드 에이지 200명을 인터뷰해 고정관념을 벗어버린 용감한 50명을 선정한 뒤 12년간의 임상 추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용감한 그들에게 사추기는 없었으며, 오히려 창조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쇠퇴기가 아닌 절정기로서 더 큰 의미를 추구하는 ‘핫 에이지(hot age)’를 보냈다.
하버드대 랭어(E J Langer) 교수의 유명한 1979년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가 생각난다. 그녀는 현대적인 시설이 없는 뉴햄프셔 피터버러 마을의 옛 수도원을 20년 전의 1959년의 복제품으로 만들고, 이곳에 70∼80대 어르신들을 초대하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장면을 흑백TV로 지켜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넷 킹 콜의 노래를 들었다. 식단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서부터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 그간 가족들이 제지하여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20년 전처럼 1주간을 보낸 어르신들에게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놀랍게도 어르신들은 시력과 청력,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느는 등 실제로 50대로 돌아간 것처럼 젊어졌다.
우리 사회의 서드 에이지들과 은퇴자들의 가정이 인생의 전성기와 절정기를 누리는 해피하우스이기를 두 손 모은다. 성경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다.(잠 16:31)
김종환 서울신대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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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시계 거꾸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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