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동환] ‘고도’를 기다리며

Է:2012-09-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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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김동환] ‘고도’를 기다리며

촛불시위로 우울하게 출발해 G20의 성공적 개최로 한숨 돌렸으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울고 런던올림픽 쾌거로 웃었던 실용주의 정부가 막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내리막길의 끄트머리에 선 지금, 강대국 눈치를 보는 실용주의 외교는 독도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고, 대기업 눈치를 보는 실용주의 경제정책은 삼성-애플 간 법정투쟁에 발목이 잡혔다. ‘눈치보기’란 말이 눈에 거슬리면 ‘친화적’이란 고상한 표현으로 바꾸겠지만, 한마디로 실속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민족의 자존심을 고양하는 자주 외교,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에 올인할 걸 그랬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중국과 러시아 견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어차피 일본의 독도 망언은 대꾸할 필요조차 없는 엄포(empty threat)에 지나지 않았고, 이미 상당수의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바쁜 대기업에서는 더 이상의 일자리도, 창의적 기업가정신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본과 국교라도 단절하겠다는 각오로 소재·부품을 국산화하고 원천기술을 개발하며 수입처를 다변화하여 특정 국가나 기업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탈피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면 같잖은 망언에 치를 떠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애플인지 사과인지 하는 글로벌 독점기업의 기술도용 시비로부터도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여전히 삼성을 포함한 우리의 기업들은 일본의 고부가가치 소재·부품과 기술 없이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어렵고, 클라우드컴퓨팅 등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은 글로벌 기업에 의해 통합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볼 때 그동안 우린 무얼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실용주의 외교는 진정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 경제를 희생할 것인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독도문제를 ‘조용히’ 처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괴로운 상황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존과 자주라는 큰 명분을 포기하고 나니 경제(즉 실리)가 볼모로 잡혀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작은 명분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실용주의 경제정책은 경제에서 명분이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왜냐하면 ‘국민기업 삼성’ 살리기에 국론을 모으려고 하면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또 다른 국론과 부딪칠 것이고, ‘글로벌기업 삼성’을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면 보호무역주의를 질타하는 글로벌 정부의 매서운 칼날에 국민경제가 다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도 명분이 없거나 결여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는 강대국들과 친선·협력하는 것 자체가 마치 명분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들은 누구도 비올 때 우산을 받쳐주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과의 자원개발 경쟁에서 연전연패해 왔다. 이렇듯 실리 없는 명분은 공허하기만 한 것임을 왜 몰랐을까. 그리고 우리는 대기업 친화적 경제정책이 식어가는 성장엔진에 다시 불을 지피기 위한 실리적 수단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명분 없는 실리는 그저 맹목에 지나지 않음을 왜 몰랐던 것일까.

명분을 포기하거나 거짓 명분으로 혹세무민하는 세상은 실리만을 추구하는 모진 자들의 아귀다툼의 장으로 바뀌어 아마겟돈으로 빠져들고, 고된 삶에 지친 마음 여린 자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눈물 속에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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