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청첩장과 보고서

Է:2012-09-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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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청첩장과 보고서

몇 년 전 이맘때였다. 우편함에 십수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고교 동창생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있어 열어보니 청첩장과 메모지가 있었다. 메모지에는 “네가 보고 싶다”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함께 결혼식에 꼭 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가수 신해철이 좋아 그의 헤어스타일도 따라했던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다들 그녀가 직접 쓴 메모에 감동받고 모였다. 결혼식은 즉석 동창회 같았고, 흥겨웠다. 그러나 그때뿐, 이후에 그녀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요즘도 청첩장을 받을 때면 그녀 생각이 나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연락 없던 지인이 전화했다 하면 백이면 백 청첩 이야기다. 어느 날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단체 이메일 청첩장을 받은 적도 있다. 옆자리 동료도 함께 받았는데 도통 누군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알고 보니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 명함만 주고받은 사이였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청첩장이 많이 뜬다. 결혼이란 이벤트의 흥행몰이를 위해 사지도 않은 물건의 청구서를 받아 든 기분이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지만 청첩장을 받는 경우의 반 이상은 결혼식 참석, 축의금만 전달, 말로만 축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할지 애매하다. 상대방과 친함의 정도를 가늠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시즌 주말에는 하루에 2∼3개 결혼식이 이어질 때도 있다. 이때는 대부분 얼굴 도장만 찍고 다음 결혼식을 향해 달려가곤 한다.

뉴욕의 웨딩 컨설턴트 정리씨는 한국의 이런 결혼식 풍경에 놀라워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을 불러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단 두 번인데. 바로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그런데 생전에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식뿐이다. 그런 중요한 날 모인 것이니 함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축하해 추억으로 가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이런 결혼식 세태에 대해 투덜거렸다. 그때 자리에 계신 한 어른 말씀으로는 청첩장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울 경우 그냥 주는 것이 옳다. 그리고 상대방은 결혼과 더불어 신분이 변화한다고 ‘보고’하는 것으로 이해하라고 한다. 청첩장을 보고서라고 생각을 바꿔보니 부담이 확 줄었다. 오히려 일생일대의 신분 변화라는 중요한 보고를 내게 해준 것이 고마워졌다. 이제 청첩장을 받을 때 쓸데없는 갈등은 치우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리라.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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