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전시를 하면 축하 화분만 오고 찾는 이가 거의 없다.”
크리스천 작가들의 이런 푸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와 예술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기독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부족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교회 안에서만 기독미술을 전할 것인가.
이연호 박수근 신영헌 김기창 안동숙 김학수 홍종명 이명의 김영재 김정숙 윤영자. 1910년대에서 2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이며 일제시대와 6·25 등 역사적 격변을 거친 목격자들이다. 우리 화단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모두 기독미술 1세대 작가다.
안동대 미술학과 서성록 교수는 “이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 땅에 새로운 기독문화를 심기 위해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지구촌교회에서 열린 2012 크리스천 아트포럼에서 ‘우리나라 기독미술 10장면’을 주제로 발제하며 시대를 초월한 기독미술인들의 사명을 강조했다.
이연호(1919∼99) 목사와 박수근(1914∼65) 화백의 시선은 빈민과 서민에 맞춰져 있다. 목회자로서의 소명에 더 뜻을 뒀던 이 목사는 빈민 병자 등 버림받은 이웃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다. 이들이 곧 그림의 주인공이었다. 작품 ‘왕의 손님’(1961)에는 다리를 잃은 거지, 지게 진 일꾼, 구두닦이 소년, 실직자, 바닥에 앉아있는 장애인들이 등장한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묘사했으나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임을 확인시켜준다.
이 목사는 생전 “버림받은 자의 친구가 되고 싶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크리스천으로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목사, 화가이기 전에 ‘진실한 인간’을 원했다.
가난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박 화백은 생활 언저리에서 소재를 찾았다. 특히 일터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아픈 자,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외로운 자, 실직한 자, 버림받은 자 등을 가리지 않고 동료로 삼았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자리로 내려가 진심으로 친구가 되려했다.
서 교수는 “박수근의 존재를 빛내주었던 것은 섬김의 자세였다”며 “이 목사와 박 화백은 동시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긍휼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다”고 했다.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신영헌(1923∼97) 화백은 6·25로 깊은 상처를 겪었다. 남한으로 내려와 정착했지만 전쟁이라는 치명적 상흔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이 같은 고난을 통해 신 화백은 성령의 불길을 남한에서 확산시켰다.
그는 신앙을 개인의 삶과 시대에 접목해 ‘부활’(1970) ‘신약의 전개’(1970) ‘빛을 따라서’(1989) ‘복음의 끝’(1989) 등 독특한 자기만의 작품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다른 전시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65년 창립된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에만 작품을 출품하는 등 기독예술 발전에만 앞장섰다.
김기창(1914∼2001) 김학수(1919∼2009) 화백은 성서를 재현함에 있어 복식과 배경을 조선시대로 바꿈으로써 기독교의 토착화에 힘썼다. 85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까지 김기창 화백은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유년시절부터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의 연작을 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서 교수는 “그러나 갈채를 받을수록 자신의 종교를 감추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기창 화백의 성경그림은 매우 담대한 결단”이라며 이런 자부심이 기독미술을 하는 작가들에게도 필요함을 강조했다.
한편 크리스천 아트포럼 발제문들은 ‘예술적 창조성과 영성’이란 제목으로 엮어 출간됐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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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을 향하여 섬김의 자세 화폭에… 2012 크리스천 아트포럼 ‘우리나라 기독미술 1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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