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 산 자와 죽은 자, 현대판 카타콤이야기

Է:2012-08-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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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 산 자와 죽은 자, 현대판 카타콤이야기

신학 전공자 출신으로 현실 속 구원 문제에 깊이 천착해온 이승우(53) 작가의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는 다섯 가지 이야기로 짜여진 다층 구조의 소설이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천산수도원의 벽서(壁書)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9쪽) 이 우연한 경로를 드러내는 일이 서사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바 핵심은 뒤이은 문장에 있다.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소설은 이 ‘누군가’에 대해 들려준다. 우선 천산수도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강영호와 동생 강상호이다. 강상호는 작가인 형의 투병을 외면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천산수도원에 대해 형이 쓴 미완성 원고를 정리해 유고집에 함께 싣는다. 그 과정에서 천산수도원을 답사한 그는 3평 남짓한 72개 지하 방에 쓰인 성경 구절들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음 인물은 강영호의 책을 읽은 교회사 강사 차동연이다. 그는 교회사연구재단의 지원으로 폐허가 된 수도원을 발굴하고 그곳 공동체의 성격을 조사하는데 착수한다.

또 다른 인물 ‘장’은 과거 군사정권 독재자였던 장군의 오른팔 한정효를 그곳에 유폐시킨 뒤 수도원 길목에 초소를 세워 감시한 인물로, 차동연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인물 ‘후’는 사촌 누이 연희를 사랑했으나 연희를 겁탈하고 버린 박 중위를 칼로 찌르고 천산수도원으로 도피한 전력의 소유자다.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데 소설의 큰 틀은 죽은 자가 유업을 남기고, 살아 있는 자가 그 유업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천산수도원은 그들의 도피 장소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수도원 지하의 72개 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방에는 벽면의 글씨 외에 어떤 장식도 없었다. 이미 소개된 대로 성경을 옮겨 적은 글씨들은 반듯하고 꼼꼼했으며 심혈을 기울여 쓴 표시가 또렷했다. 대개 먹을 썼지만 군데군데 채색이 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야생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염료를 이용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크기와 색깔이 적절히 섞여 조화를 이룬 글씨들은 거리를 두고 보면 미술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흔두 개의 방에 적힌 글들의 필적을 분석한 발굴 팀은 잠정적으로 한 사람의 필적만은 아니라고,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필사에 참여했을 거라고 추정했다.”(332쪽)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작가는 차동연의 입을 빌어 이들 지하 방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과 유사하다며 이렇게 들려준다. “미로와 같은 지하 통로, 통로 양옆의 묘혈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상징들을 형상화한 벽화들(물고기 배 속의 요나, 세례 받는 예수, 오병이어, 비둘기, 어깨에 양을 얹은 목자 같은)과 천국에서의 안식을 염원하는 기원문들로 채워진 카타콤 내부를 천산 공동체의 지하 공간과 비교하고 그 유사점을 언급했다. 그는 천산 공동체 벽서의 제작 동기가 카타콤 벽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이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과 곧 맞이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놀라울 만큼 강렬한 소망. 그들은 순수하고 철저했다.”(345쪽)

소설은 현대판 카타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현대사의 굴절된 단면을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들여다본 이승우 문학의 새로운 도전으로 읽힌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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