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낙향한 도연명의 삶, 유유자적했을까

Է:2012-08-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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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낙향한 도연명의 삶, 유유자적했을까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리카이저우/에쎄

“나는 쌀 5말(하루치 봉급)을 얻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중국 남북조시대 동진(東晉) 사람 도연명(365∼427)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어른 노릇을 한 작은 아버지 덕분에 30대에 현령 자리를 얻었다. 앞서 두어 번 직장을 그만 둔 전력이 있는 그는 아내와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겠다고 작심하고 들어간 직장이지만 이 마저도 곧 사표를 던졌다.

그때 던진 이 말은 도연명을 들어가기 어려운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온다는 뜻의 ‘난진이퇴(難進易退)’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이후 낙향해 국화 농사를 지으며 시를 지었던 그의 삶은 지금까지 1500여 년간 동아시아 뭇 문인·화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됐다.

그렇다면 낙향했던 도연명의 실제 경제형편은 어땠을까. 유유자적 은일의 삶을 즐겼을까. 중국 고대사 관련 책을 주로 써왔던 저자는 이런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던지며 정사가 보여주지 않은 위인들의 세속적 일상을 파헤친다.

그가 사료를 들춰 밝혀낸 도연명의 낙향 후 삶은 고달팠다. 관직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직위도 높지 않았고 재임기간도 짧아 모은 돈이 없었다. 농사일에는 서툴렀고 큰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렇듯 색다른 시선으로 해부한 중국 역사 속 인물은 공자 맹자 묵자 등 춘추전국시대 대표적 사상가에서 드라마 포청천으로 잘 알려진 송나라 판관 포공, 명나라 문인이자 화가 당백호, ‘홍루몽’을 지은 청나라 소설가 조설근 등 13명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는 부자였을까. 전국 순위에 들만큼 부자였던 맹자는 어떻게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까. 판결의 귀재라고 불렸던 포청천이 청렴결백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조조는 왜 죽을 때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을까.

책은 술자리 뒷담화 같은 이런 통속적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역사책 속에 근엄한 표정으로 존재하는 이들 위인에게 이런 질문은 불경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라도, 뛰어난 장군이라도 시만 짓거나 전쟁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할 일상이 있지 않은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중국 성리학파 대가인 정이가 한 말에 답이 있다. “군자는 물질을 부리고 소인은 물질의 노예가 된다.” 이는 물질을 배척하라는 게 아니라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책은 경제생활과 관련해 사료에 근거해 수많은 통계 수치를 제시하기 때문에 그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시대의 뒷골목 풍경을 보여주는 풍속사로도 읽힌다. 박영인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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