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웅변과 침묵

Է:2012-08-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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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자는 동의하는 것으로 본다(Qui tacet, consentire videtur)’라는 법언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시인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인데, 세상만사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애인에게 청혼할 때 상대가 묵비(默秘)한다고 이를 곧 혼인의 승낙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침묵이 곧 동의인지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형법상 피의자의 권리인 묵비권은 유력한 방어수단이긴 하지만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범죄를 입증할 무수한 증거를 들이대는데 묵비한다고 죄가 씻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비는 주로 민사사건에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마지막에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일수록 더욱 그렇다. 반드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둬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형사재판에서도 심리의 마지막 단계인 검찰의 구형 직후 피고에게 최후진술을 할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죄를 후회하고 반성한다든가 피해자나 유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이 정권의 실세로 지내다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씨의 태도는 의외였다. 그는 최후진술 에서 ‘태산에 부딪쳐 넘어지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무더기’라는 한비의 말을 인용, 참담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다. 압권은 ‘정치를 해보면 알겠지만, 한 달에 5000만원씩 1년에 걸쳐 받은 것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정치를 하려면 6억원은 그냥 받아도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정치에는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을 강조한 말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최후 진술치고는 썰렁했다.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그의 말은 돈 받지 않고 깨끗한 정치를 하려고 애쓰는 이 땅의 수많은 정치인에 대한 모독이다. 침묵의 미를 몰라서 그랬을까.

대통령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진보 정치인 죽산 조봉암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이렇게 말했다. “경쟁에 져 죽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정치보복으로 억울하게 죽는 정치인이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친 뒤 정적의 음모로 유명을 달리한 그였기에 끝까지 의연할 수 있었으리라.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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