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그 언론이 제공한 뉴스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한다. 한 조각의 뉴스와 TV 이미지로 세상을 각인한다. 이를 ‘머릿속의 상(pictures in our heads)’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불완전한 언론에 투영된 유사환경(pseudo environment)과 고정관념을 통해 현실을 인지하며 이야기한다. 이를 월터 리프먼은 여론이라고 한다. 여론은 개인이 가진 ‘사회적인 피부(social skin)’다. 이를 통해 흐름을 파악한다.
언론은 세상을 그려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묻는다. 즉 여론을 만들어 낸다. 언론은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한다. 한 줌의 활자로 사회의 온도를 정확히 묘사해 전달한다는 게 얼마나 지난(至難)한 과정인지. 마음을 비우고 편견을 버리고 수려한 어휘력을 동원해도 사회적인 피부인 실제 현실은 기자들이 대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다. 그만큼 윤리적이고 객관적인 보도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방법론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마치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반대편 벽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듯 (제멋대로 그려낸) 머릿속 그림에 의존해 실제의 인물과 세상을 인식한다고 우기며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사회적 진실(social truth)이라고 한다.
여론은 그림자에 나타난 이미지를 보고 지도자를 판단하는 과정인 것이다. 출판과 오락프로그램은 여론을 조각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이게 바로 이른바 ‘이미지 정치’와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여론이 범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급기야 ‘쇼 정치’라고 부르게 된다.
최근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은 독도 관련 이슈로 여론 프레임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이념적으로 처한 위치에 따라 진보·보수의 언론은 여론을 세팅한다. 보석의 세팅처럼 잘 팔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잘 팔리면 이를 의제설정 효과(agenda setting effect)가 있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번들거리는 이 커팅과 세팅이 시장에서 어필이 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세팅과 수용자의 머릿속의 상이 잘 교감해야 한다. 이때 여론으로 작동한다.
여론을 모으기 위해서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공간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실제 환경은 대체로 직접 지각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며, 너무 빨리 지나갈 뿐 아니라 우리가 정치적으로 다뤄야만 하는 세계는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 혹은 사람들의 마음 밖에 있다. 언론사조차도 여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답할 때 여론조사를 한다. 선거도 국책사업도 여론으로 판단하는 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조사의 숫자의 힘은 곧 신봉하며 따라야 하는 실체이고 신앙이 된다. 한 마디로 여론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된다.
우리는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요동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철수의 생각’ 하나에 흔들리는 것이 국민의 여론이다. 미디어정치시대, 여론조사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지도자도 국민도 불완전한 현실인식에, 여론조사 결과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과도한 의존의 대표적 사례가 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이다. 여론은 인기영합과도 같다. 그래서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여론조사가 그 본질을 벗어나 이런 왜곡과 권력획득에 이용될 때는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도 당초 총선 후보를 고르는 여론조사의 부정과 왜곡에서 시작됐다.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더불어 객관성 타당성 포괄성 균형성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는 한층 더 엄격함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권상희 성균관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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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권상희] 여론저널리즘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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