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린 그림일까 비 그친 숲속 금강송…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3구간 트레킹
산더미 같은 지게 짐을 짊어지고 열두 고개를 매일 넘어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지게꾼으로 불리는 그들은 경북 울진에서 해산물을 잔뜩 지고 130리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봉화에서 농산물로 바꿔 다시 울진으로 돌아오는 고된 여로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1980년대 초 불영계곡을 관통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바지게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땀방울을 먹고 자란 금강송 숲은 더욱 울창해져 명품 트레킹 코스로 거듭났다.
‘십이령 바지게길’로 불리는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모두 5개 구간으로 현재는 1구간(13.5㎞)과 3구간(18.7㎞)만 개방되고 있다. 그 중 3구간은 올해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한 소광리 금강송 숲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인터넷 예약(www.uljintrail.or.kr)을 통해 하루 100명만 방문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 울진 북면 두천1리와 서면 소광2리를 잇는 1구간은 하루 80명만 예약이 가능하다.
숲해설사와 함께하는 3구간 트레킹은 소광2리 금강송펜션에서 출발한다. 폐교인 삼근초등학교 소광분교를 개조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송펜션은 그 옛날 바지게꾼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 그들은 이곳에서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던 옹기솥으로 밥을 지었다.
소광2리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길섶을 수놓은 야생화들이 매혹적인 자태로 나그네들을 맞는다. 꽃잎이 하얀 꿩의다리와 어수리를 비롯해 노란색 마타리와 붉은색 물봉선화가 지천인 산길은 이따금 산새와 풀벌레가 인기척에 놀라 날갯짓을 할 뿐 호젓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
저진터재로 불리는 첫 번째 고개를 넘으면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던 저진터. 화전민과 바지게꾼들이 사용하던 디딜방아와 신발, 옛날 소주병 등이 남아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너삼밭재로 불리는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길은 소광천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임도를 만난다. 고삼으로도 불리는 너삼은 성분이 인삼과 비슷해 한약재로 쓰였으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약초. 금강송펜션에서 너삼밭까지 2.8㎞, 너삼밭에서 소광리 금강송 숲까지 4.5.㎞로 결코 지루하지 않다.
목질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금강송의 본래 이름은 황장목(黃腸木). 속이 노란 황장목은 표피가 붉어서 적송, 줄기가 매끈하게 뻗었다고 해서 미인송으로도 불린다. 목재의 집산지가 봉화 춘양이어서 춘양목으로도 불리는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의 기둥이나 왕실의 관으로 쓰인 귀한 소나무다.
하지만 일제의 대대적 벌목과 개발로 백두대간 주변의 금강송은 멸종되다시피 했다. 소광리 금강송 숲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지 중 오지였기 때문. 조선 숙종 6년에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이 금지됐던 소광리 금강송 숲은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후 민간인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됐었다.
‘소나무의 정부가 어디 있을까?/ 소나무의 궁궐이 어디 있을까?/ 묻지 말고,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로 가자/ 아침에 한 나무가 일어서서 하늘을 떠받치면/ 또 한 나무가 일어서고 그러면/ 또 한 나무가 따라 일어서서/ 하늘지붕의 기둥이 되는/ 금강송의 나라/ …’
소광리 금강송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도현 시인의 ‘울진금강송을 노래함’ 시비가 나그네들을 맞는다. 소광리 금강송 숲의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7배가 넘는 2274㏊. 삿갓재와 백병산 기슭을 따라 200살을 훌쩍 넘긴 노송 8만여 그루가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 많은 금강송은 520살. 금강송 전시실 앞에 뿌리를 내린 금강송은 숲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노송으로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려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 비슷한 시기에 산 중턱에 뿌리를 내린 못생긴 금강송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가지가 휘어져 목재로서의 가치가 없는 덕에 벌목을 피한 때문이다. 못난 자식이 효도하고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옛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나 할까.
솔향 그윽한 임도를 쉬엄쉬엄 오르면 금강송과 참나무가 서로 붙어 한 몸이 된 공생목이 눈길을 끈다. 금강송의 나이는 120년, 참나무의 나이는 80년. 서로 다른 나무가 수십 년 세월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셈이다. 새삼 이 공생목 앞에 서면 티끌만한 일로 아옹다옹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사가 부끄러워진다.
임도와 계곡으로 이루어진 금강송 산책로는 둘러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숲에는 미인송을 비롯해 붉은 껍질의 금강송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뚝우뚝 솟아 있다. 금강송 숲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비가 그친 후. 숲에서 피어오르는 산안개 사이로 보이는 금강송이 여백이 많은 산수화를 보는 듯 황홀하다.
울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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