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애덤 스미스가 본 119조 1·2항
헌법 119조 1항과 2항의 관계는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문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것을 따지는 것 자체를 사상의 유희쯤으로 비하하기도 했고 2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이나 1항을 중시하는 주장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보았을까.
주지하듯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중상주의 대신 자유주의 정책이 정착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중상주의자들은 금(金)을 국부로 보고 국내 보유 금의 양을 극대화하고자 했지만 애덤 스미스는 금이 아니라 재화의 양이 국부라고 강조하고, 무역을 포함해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가격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아야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어 분업의 이익이 실현됨으로써 재화의 생산과 소비가 극대화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수출을 지원하고 수입을 억제함으로써 수출대금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금화의 수량을 늘리고, 수입대금 지불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금화의 수량을 줄이는 중상주의 정책은 국내로 들어오는 금화의 수량을 늘리지만 국민들이 소비할 수 있는 재화를 줄여 국민들의 생활은 궁핍해진다. 금화는 더 많아질지 모르지만 분업의 이익이 실현되지 않고 국민들이 쓸 재화의 수량은 줄어 재화의 가격들만 올라가 국민들의 생활은 궁핍해진다.
‘국부론’에 비해 덜 알려진 중요한 책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사회를 건축물에 비유했다. 이 건축물의 기둥에 해당하는 것이 개인들의 재산권을 확정하고 이를 약탈로부터 보호하는 정의(正義) 실현이며, 자비를 베푸는 자혜(慈惠)는 사회라는 건축물이 보기 좋게 해주는 장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둑이라는 사회조차도 유지되려면 정의의 기둥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만약 강도들과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회가 존재하려면 그들은 적어도 서로를 강탈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자혜는 정의보다 덜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는 자혜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不義)의 만연은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켜버린다.”
기둥에 해당하는 정의의 원칙과 자혜의 원칙은 우리나라 헌법 119조 1항과 2항의 내용과 상응한다. 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개인들이 그들의 재산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 근간을 세운 셈이다. 이에 비해 헌법 119조 2항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국가(정부)가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헌법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그 의의를 볼 때 정치권력을 제한하려는 시도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럴 때 의미가 있다. 이를 감안할 때 119조 2항은 국가가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공복을 자처하며 뽑힌 정치인들이라 할지라도 경제학자가 그들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대(大)정치가 피트는 경청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모임에 조금 늦게 도착한 애덤 스미스가 자신을 맞으며 일어선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하자 피트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앉지 않았는데 어떻게 학생들이 먼저 앉겠습니까?”
현재 미국의 대선 과정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정부지출 삭감’ 대 ‘재정 확대’로 선명한 정책 대결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도 경기침체의 원인과 그 대응 방법을 두고 하이에크와 케인스가 벌인 경제이론의 투쟁이 투영돼 있어 경제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괜히 부럽다.
김이석(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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