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것들에 입 달아 줘… 진은영 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Է:2012-08-1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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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없는 것들에 입 달아 줘… 진은영 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42·사진)의 시를 읽으면 행복하다. 우리가 말하려고 애썼으되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하기에.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련돼 있기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에.

“창백한 달빛에 네가 너의 여윈 팔과 다리를 만져보고 있다/ 밤이 목초 향기의 커튼을 살짝 들치고 엿보고 있다/ 달빛 아래 추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 램프가 있다/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죽은 가지 위에 밤새 우는 것들이 있다/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있다’ 부분)

그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의 첫 시는 ‘존재’를 의미하는 ‘있다(being)’로 장식돼 있다. 무엇이 어떻게 있는가. 달빛 아래 추수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 램프, 버드나무 꽃가루, 밤새 우는 것 등이 함축하고 있는 세계는 한 번도 제 목소리를 낸 적이 없거나 억압당한 존재들이다. 시인은 낮은 목소리의 존재들에게 목청을 달아준다. 마치 우리 주변의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에 ‘나’를 증폭기로 사용하세요 라고 말하듯. 이 시는 처연하게 아름다운 구절로 마무리된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깨진 나팔의 비명처럼/ 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처럼/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있다’ 마지막 연)

그렇다.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둥글게 파문이 지는 노래는 멀리 있지 않다. 진은영의 노래는 아무도 찾지 않아 입을 다물어버린 외딴 호수의 수면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처럼 처음엔 작은 파문으로 시작해 호수 전체로 번져간다. 시집은 작은 조약돌에서 시작해 마침내 호수 전체를 흔드는 출렁임의 무늬로 가득하다. 아니, 시집 전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출렁이고 있다.

“하늘이 저기 있다/ 입은 채로 자신의 나일론 치마를 불태우는 여자처럼// 벽에 걸린 그림 속에는 전나무의 녹색 바늘, 옥수수알의 노란빛이/ 눈을 찌르는 오후가 있다// 불꽃, 너는/ 내부에 젖은 눈동자가 달린 동물 하나를 키우고 있다”(‘노을’ 전문)

진은영은 자신의 목숨을 태워 시를 쓴다. 우리가 그의 시를 읽고 행복을 느낄 때 그의 목숨은 줄어드는 것이 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진은영이라는 ‘있음’ 자체가 하나의 노래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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