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없는 순국선열 묘비 닦는 ‘독립투사의 아내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 닦기 봉사 광복선열부인회
“다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인데 챙겨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들도 같은 가족이고 우리 ‘지아비’인데….”
14일 오후 서울 구의동 자택에서 만난 황인순(73) 할머니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의 위패를 닦는 사진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무후선열제단은 후손이 없는 독립운동가 133명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황 할머니는 2007년부터 독립투사의 부인들로 이뤄진 광복선열부인회 회원들과 함께 종종 이곳을 찾아 묵념을 하고 위패를 닦고 있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지 67년이 지난 올해 광복선열부인회 회원은 대부분 80대 중반의 할머니들이다. 황 할머니는 “광복투사 부인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봤지만 꼬부랑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청소 정도밖엔 없더라”며 “이게 우리의 정성”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묘비를 닦으러 다녔지만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엔 폭염 탓에 현충원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황 할머니의 손등엔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황 할머니는 “독립투사의 부인으로 혹독하게 고생하며 나이 먹은 흔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황 할머니는 임시정부 광복군 장교로 독립운동을 했던 고(故) 최기옥 선생의 부인이다. 최 선생은 1977년도 대통령 표창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다음해 심장병으로 숨졌다. 황 할머니는 그때부터 작은 라면가게를 운영하며 다섯 남매를 키웠다.
“3대가 독립운동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친정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남편까지 독립운동을 했지. 그러나 절대로 망하지 않아.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이야. 그들의 정신과 기개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지.”
차분하게 얘기를 이어가던 황 할머니가 갑자기 정치인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독립투사가 희생해서 찾은 나라에서 국회의원들이 자기 먹고 살 궁리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조금 희생하더라도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남편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옥(76) 할머니도 종종 황 할머니와 함께 현충원을 찾는다. 서울 합정동 광복선열부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할머니는 매년 광복절만 되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광복절이 되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생각난다”며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일되지 않은 이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손자들에게 독립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지난 5월 스위스에 사는 손자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은 대전현충원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광복의 역사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선조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켰고 어떠한 역사를 걸어왔는지 젊은이들이 깊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광복절은 그냥 노는 날일 뿐”이라며 “광복절이 그냥 인기 없는 옛날이야기가 돼 버린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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