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이성락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 같은 전문직 예술과 친해지면 生이 정돈됩니다”

Է:2012-08-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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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터뷰-이성락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 같은 전문직 예술과 친해지면 生이 정돈됩니다”

이 어른, 차림새부터 심상찮다.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재킷을 걸친 데다, 신발은 고동색 스니커즈를 신었는데, 그 패션이 밝고 조화롭다.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의 노인이지만 머리만 희끗할 뿐 이마에는 주름마저 없고, 동그란 안경테 속에서 눈은 빛났다. 두 시간여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목소리는 맑고 투명했다.

이성락 가천대 명예총장. 그는 연세대 교수와 아주대 의대학장, 가천대 부총장, 세계피부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뒤 2003년에 교직생활을 마감했지만 지금이 현역 때보다 더 바쁘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 길병원 피부과 외래의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조직위원장,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회장,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생이다. 이런 직함을 관통하는 것은 ‘문화’라는 굵은 줄기 하나다.

“지금은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가장 좋습니다. 지난 학기에 박사과정을 끝냈는데, 그동안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수업시간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왔지요. 논문 주제는 제 전공에 맞춰 ‘한국 전통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으로 잡았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기생의 신분으로 어쩔 수 없는 간밤의 숙취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하하!”

왜 늠름한 조선 젊은이의 초상화는 없느냐고 묻자 그는 신이 난 듯 설명을 이어갔다. 조선시대에는 벼슬 후 낙향을 했고, 시골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병이 들어 임종이 가까워지면 조정에 보고를 올리고, 그러면 임금이 화인(畵人)을 보내 초상화를 그리게 하니 청년의 얼굴은 풍속화에나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새로운 내용을 공부한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논문을 쓰느라 바쁘실 텐데, 올림픽은 보셨는지요?

“4년 만에 펼쳐지는 인류의 잔치인데 마다할 수 없지요. 저는 다만 선수들의 얼굴을 많이 관찰했습니다. 양궁의 기보배 같은 선수나 배구의 김연경 선수의 피부 보셨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스포츠 선수들에게 피부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 친구들은 이미 비주얼 세대이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치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피부가 경기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지요.”

-우리 선수들의 용모나 태도가 아주 세련된 것 같습니다.

“유니폼의 디자인을 보세요. 우리 것은 날아갈 듯 자유롭고 경쾌해요. 이에 비해 일본은 아직도 교복패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요. 억압적인 사회분위기가 남아있다는 거지요. 중국은 아예 조잡하더군요. 이게 다 미술 수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동양에서 추상미술이 성공한 곳은 한국뿐이거든요. 중국미술은 아직도 구상에 머물고 있어요. 사회가 추상을 알아야 상상력의 날개가 펼쳐지는 겁니다.”

의사 출신으로 국제아트페어 조직위원장을 3년이나 하고, CEO급 미술애호가 1000여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현대미술관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본국의 차관보로 영전한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의 말을 전했다. “한국 미술은 더 이상 다이내믹하지 않다. 이미 아방가르드다!” 이 정도는 한국문화에 대한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다.

그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공부했다. 서울 보성고를 졸업하던 1958년 바로 뮌헨대학으로 유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1975년에는 그 어렵다는 교수자격시험까지 통과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요한볼프강괴테대학의 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국에 와서 의사들에게 에세이쓰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예술이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의사들의 직업윤리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의사도 사회의 일부입니다.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은 막말을 해대고, 존경받아야 할 대법관은 위장전입을 밥 먹듯이 하고, 교수들이 논문표절을 다반사로 하고…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만 나무랄 수 없지요. 그런데도 국민의 기대는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트레스가 많은 의사들이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기보다 문화생활을 적극 권장합니다.”

-문화의 어떤 힘을 믿습니까?

“하루에 매일 시를 읽고, 주말에 음악회나 미술관을 다니면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생깁니다. 작품과 더불어 자아와 대화를 하거든요. 문화에는 또한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고, 거기서 긍정적 에너지가 나옵니다. 의사와 같은 전문직들은 늘 문학을 접하고 예술과 친해져야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어요.”

-의사들이 그런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제가 아주대에 있을 때 매달 학생들을 데리고 미술관엘 갔습니다. 물론 희망자에 한해서. 1월에 의사국가고시가 있는데 11월에도 현대미술을 구경했어요. 학부모들은 불안해했죠. 그러나 결과는 100% 합격이었습니다. 평균점수도 좋았고요. 문화를 경험하면 오히려 집중력을 향상 시키고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의대생들에게 난해한 현대미술을 어떻게 이해시켰습니까?

“광주비엔날레에 가서는 학생들에게 한마디만 했습니다. ‘해석하려들지 말고 그냥 느껴라.’ 피카소가 말했죠. 날아가는 새들이 지저귀는 것에 대해 무슨 뜻인지 묻지 않듯 자기 그림에 대해서도 묻지 말라고. 추상미술은 온전히 보는 사람의 몫이거든요. 산수화는 매일 똑같지만 추상은 아침저녁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림 컬렉션이 많겠습니다.

“저는 작품을 소장하기보다 관람을 즐기는 편입니다. 좋은 전람회가 있으면 뉴욕이나 파리까지 비행기 타고 가서 보고 옵니다. 물론 가끔 작품을 사지요. 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고르는데, 우선 값이 비싸지 않아 좋고, 내가 구입함으로써 작가에게 도움이 되어서 좋고, 그 작가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큽니다.”

-정부의 문화정책은 어떻게 보시나요?

“중국 미술이 약진하는 것은 정부가 부축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심이 있는 거지요. 제가 아트페어를 이끌면서 느낀 점은 정부가 아예 문화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미술품 양도소득세만 해도 대다수 영세화랑의 경우 세원(稅源)이랄 것도 없는 데 얼마나 거두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어요. 그림을 유통시키는 갤러리가 죽으면 덩달아 화가들이 죽고 문화가 죽습니다. 문화의 수혜자는 부자가 아니라 국민 모두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해요.”

이 총장은 노인문제에도 적극적이다. 용어부터 ‘고령자’를 선호한다. 지난 2009년에 창립한 골든에이지포럼은 노인을 국민연금이나 빼먹는 존재로 폄하하는 데 반대한다.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만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령자들도 ‘꼰대’ 소리를 듣지 않게 깨끗하고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요?

“일주일에 한번 청계산을 가고, 두어 번 헬스클럽에도 나갑니다. 무엇보다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돈의 문제 이전에 정신이 중요해요. 능동적 자세 말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술과 담배에 기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다시 피부과 의사로 돌아가지요. 요즘 우리나라를 ‘미친(美親) 사회’로 부를 만큼 외모를 꾸미는 데 돈을 퍼붓습니다.

“저는 요즘도 일주일에 하루 인천 길병원 피부과에서 진료를 하는데, 선이 동양적인 젊은 여성을 보면 절대 쌍꺼풀이나 코 수술을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사람들이 몸에 너무 손을 대니까 내적인 아름다움 혹은 행복감마저 드러날 여지가 없어요. 오리지널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마음이 맑아야 좋은 피부가 나오듯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가득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발현될 것입니다.”

이 총장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노인’이니, ‘고령자’니 하는 용어가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저 지혜롭고, 여유 있고, 완숙한 어른의 정돈된 삶이 있을 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는데, 예쁜 미니 쿠퍼가 앞을 휙 지나갔다. 차 속에서는 ‘젊은 노인’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만난사람=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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