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눈 오는 밤 감옥에서
四山圍獄雪如海 감옥 두른 산에 눈은 쌓여 바다 같은데
衾寒如鐵夢如灰 이불은 쇠처럼 차고 꿈은 재마냥 싸느랗다
鐵窓猶有鎖不得 철창조차 잠그지는 못하나니
夜聞鐘聲何處來 한밤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설야(雪夜)’
1905년 일제는 보호를 명분으로 대한제국을 협박하여 터무니없는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이른바 을사조약이다. 그로부터 꼭 5년 만인 1910년 9월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대한반도를 점령하였다.
소식을 접한 선비들은 비통함을 이기지 못했다. 영양 일월산에 은거하던 이만도 선생은 24일을 단식하여 목숨을 끊었다. 영해의 김도현 선생은 어버이의 삼년상을 마친 다음, ‘희디흰 천길 물속이 내 한 몸 간직할 곳(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이라고 읊으며 동해로 걸어 들어가 그대로 삶을 마쳤다. 구례의 매천 황현 역시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한 날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슬프지 않겠는가?’ 하고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선비들의 자결을 두고 문약한 지식인의 퇴행적 항거라고 혹평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죽음들이 조선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 전개될 험난하고 오랜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3·1 만세운동은 이 정신의 전국적 개화(開花)이다.
한용운은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경성지법 특별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쇠처럼 차디찬 이불에 꿈마저 싸느랗게 식는다. 그러나 눈 내리는 겨울 감옥 속에서 한용운은, 총칼과 감옥이 세상 모든 것을 옥죄고 가둔다 하더라도 저 새벽 종소리는 가두지 못하였노라고 읊었다.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자유와 독립의 의지를 가두지는 못한다는 그 기개가 미명의 종소리보다 묵직하게 울려온다.
돌아온 봄에 꽃은 피고, 회복한 땅엔 새살이 돋았다. 아픔은 사라졌고, 흉터는 남았다. 남은 흉터가 부끄럽다고 외면하거나 거짓으로 미화할 수는 없다. 더욱 혹독한 아픔을 다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옥중에서 뽑아 올린 이 시가 아무리 드높은 예술로 승화된 절창이라 할지라도, 이런 절창은 결코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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