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의미’의 언어

“저 아줌마가 더 예쁘니, 엄마가 더 예쁘니?”

요즘 아이들 말로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7년 전쯤 일인 것 같아요. 동화책 공주님도 제쳐두고 이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던 일곱 살배기 아이가 처음 한국에 오더니 한 아파트 대형 광고판의 모델을 보고 그러는 거예요. “와, 저 아줌마 예쁘다!”

아이의 입에서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에 내심 질투심이 발동했던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여배우와 외모경쟁을 할 생각을 했답니까. 엄마의 질문에 아마도 ‘일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아들아이는 잠시 고개를 푹 떨구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또박또박 대답을 했어요. “저 아줌마는 예쁘구요, 엄마는 좋아요.”

그날도 아이에게 한 수 또 배웠습니다. 아이가 ‘응시’의 언어와 ‘의미’의 언어를 정확히 구분하고 있음을 깨닫고, 고슴도치 엄마는 삐죽삐죽 자랑의 뿔도 돋아났습니다. ‘여배우’와 ‘엄마’를 똑같이 응시의 언어로 비교하라고 물어본 제가 잘못했던 겁니다. 엄마는 평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니까요. 어떻게 관계성을 평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메를로-퐁티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그런 말을 했어요. 나와 너는 주름처럼 겹쳐서 서로의 존재에 살이 맞닿아 있는 관계적 공동체라고요. 때문에 ‘공동체의 시선’은 ‘너’를 응시 대상으로 놓고 평가하지 않는다고요. 할아버지에게 손녀딸은 10㎏쯤 살이 쪘든 상관없이 항상 ‘사랑스러운’ 법이니까요. 방학을 맞아 들렀다며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는 손녀딸은 존재 자체로 언제나 반가운 법이니까요.

44, 55사이즈의 몸매, 32-24-36의 S라인…. 아내, 엄마, 친구, 딸에게 이런 ‘응시’의 수치들을 적용한다면 우린 일곱 살배기만도 못한 어른들이 아닐까요. 내가 관계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공동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의미의 언어로 말해준다면 상처받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고, 세상은 또 그만큼 더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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