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미워도 다시 한번

Է:2012-08-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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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안주연] 미워도 다시 한번

내가 정기구독하는 잡지의 이달치 부록으로 나온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넘기다가 허드렛일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뉴욕에서 유명한 한국인 헤어 디자이너의 성공 비결은 바로 미용실 초급자가 담당하는 ‘머리 감기기’였다는 내용이다. 수많은 사람의 머리를 감기면서 두상과 머리카락 특성이 입력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다양한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만들 때 큰 자산이 됐다는 것이다.

글을 쓴 잡지 발행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냉장고 품평이나 테이블 데코레이션 강의 요청 등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학교에서 배울 일이 없고, 그저 생활 속에서 구체적 경험이 필요한데 실상은 집안의 허드렛일에서 비롯된 것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내 친구들도 이제 경력이 늘어났는지 모이면 상사보다 후배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많다. 그 중 “이런 일 하려고 들어온 것 아닙니다” “제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네요”라고 항의하거나, 회사를 그만둘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고 한다. 선배도 했고, 자신도 했고 이제는 당연히 후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켰는데…. 그러면서 우리도 기존 방법만 고수하는 ‘꼰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진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한 잡지사와 우리 호텔 일식 주방장 인터뷰를 주선하면서 모든 일에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미용사의 머리 감기기처럼 말이다. 요리사가 된 계기를 물어보니 “아버지가 시켜서”라고 싱겁게 답한다. 청와대 요리사 할아버지, 호텔 주방장 아버지 등 요리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에 일식만 없군. 네가 일식을 해라”고 해서 일식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일식은 유난히 규율이 엄하고 절도가 있어 시키는 일만 해 재미가 없었단다. 그런데 10년이 넘은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고객 반응도 확인하면서 재미가 생겼고, 지금은 이 직업을 택한 게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 자신 있게 하는 일들은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해온 것이다. 운 좋게 건너뛰었던 것은 어느 순간 나의 약점이 되어 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거나, 아니면 노력할 기회조차 없을 때도 있다. 그때는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한다고 소리 질러대며 자료정리부터 시키던 선배를 정말 원망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분이 내 자신감을 만들어준 것 같다. 그동안 미워했던 선배에게 안부 전화부터 해야겠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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