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영국, 한국에 대한 시선

Է:2012-08-0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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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전정희] 영국, 한국에 대한 시선

영국은 ‘서양’이다.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시민사회, 합리적 사고, 산업화, 교통·통신의 발달 등의 키워드로 해석될 수 있는 근대성의 본향이다. 그들의 역사는 모범생의 역사다.

19세기 대영제국의 눈에 조선은 ‘야만’이었다. ‘게으름이 국민적 특성인 나라’로 축약됐다. 이들과의 교류는 1870년대부터 시작됐다. 두 나라의 징검다리 역할은 일본이 했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이 3세기 이래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믿었고,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수용했다. 항구도시 부산을 ‘일본의 칼레’로 인식했을 정도다. 영·불 100년 전쟁 결과 영국이 프랑스에 소유하고 있던 영토 전부를 잃고 칼레항만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던 데서 기인한 것이다.

영국 정치인 커즌은 1893년 한국을 방문, “이 작은 나라는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부패했고, 독립을 통해 이득을 얻어내기에는 너무나도 쇠약했다”고 진단했다. 그 무렵 한국 여행을 한 영국인은 한결같이 정부와 지배층의 부패와 착취를 언급했다. 한국 정부 재정고문으로 세관 업무를 총괄하던 매크리비 브라운 같은 이는 을사조약 체결에 분노, 순국했던 민영환조차 부패했었다고 지적했었다.

이 무렵 여성 탐험가 이사벨라 버드는 거룻배로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을 한 뒤 “버려진 듯한 흙집(초가집)에서 농부들은 우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부유한 수령은 으리으리한 집에 살았다”며 부패한 관료들을 질타했다.

결국 무능하고 부패한 왕조는 약탈의 시대에 대응하지 못했고, 을사조약이라는 치욕을 맞게 된다. 한데 이 치욕에 거들고 나온 나라가 영국이다.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이 인도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을 묵인했다.

독립협회 회장을 지낸 윤치호는 “한국이 어차피 강대국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면 영국에 종속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는 망언을 했는데 공교롭게 ‘동아시아의 영국’이라는 일본 식민지가 됐다.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지향점을 영국으로 보고 그들을 배웠던 일본이었다. 소설가 드레이크도 ‘어떤 민족이 강압적으로 통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내부에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멸망한 민족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조선이 악의 무고한 희생자들이라고 심약하게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이 같은 시각은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이어져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구상으로 이어졌다.

그 영국 중심 런던에서 올림픽이 한창이다. 1948년 승전국 영국 등에 의해 사실상 신탁통치되어 미군정청으로부터 여권을 받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참가해야 했던 한국은 오늘날 19세기 영국 못지않은 ‘모범생의 역사’를 만들어 가며 선전하고 있다. ‘게으름이 국민적 특성인 나라’가 ‘빨리빨리’로 바뀐 뒤 그 정신을 정보기술(IT) 분야에 발휘해 유럽에 신산업혁명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런던 출생으로 한국 최초 근대식 공립교육기관 육영공원 교사로 초빙됐던 윌리엄 길모어가 “역사와 저력이 있는 한국을 착취와 침략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자국의 태도에 주의를 주었던 점이 상기된다.

우리 국토 면적의 1.1배, 비슷한 인구 규모, 남북 및 영호남 갈등과 유사한 그들의 지역갈등. 영국은 여러모로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지적했던 중요한 대목 하나는 부패였다. 19세기 영국 못지않은 국운상승기인 우리에게 부패 문제 해결은 결승점을 앞둔 마지막 주자의 바통 이어받기와 같다.

전정희 정책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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