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싸움에 나갈 만한 자
민수기 1장 3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만큼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계명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되어서 신자 된 너희들만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싸움이 필요한데 그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민수기인 것입니다. 민수기 앞에 있는 레위기의 주제가 ‘거룩’인 것을 생각하면 민수기에서는 거룩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를 헤아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라는 표현이 민수기 1장에서만 14차례 반복됩니다. 성경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싸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강건한 사람이어야 하고 성숙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정도 조건은 구비되어야 영적인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흔히 교회를 가리켜서 병원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처럼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위로받고 치료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모인 모든 사람이 위로받고 치료받기만 원한다면 세상의 소금과 빛 역할은 누가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되는 일은 누가 감당합니까. 링거 주사 꽂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병원이라기보다 훈련소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마마보이로 들어갔다가 국토방위를 책임질 만한 군인이 되어서 나오는 곳이어야 합니다. 일선으로 복귀될 날을 기다리며 피 끓는 혈기를 누르는 곳이어야 합니다. 간혹 교회에서 ‘누구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물론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잘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재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누구 때문에 상처 입었다는 나약한 원망을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이런 일로 상처 입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지 먼저 따져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젊은 아가씨들에게는 피부가 고운 것이 자랑일 수 있습니다. 야외에 나가면 탄다고 엄살 부리는 모습이 여성스러움일 수 있습니다. 남자 친구에게는 그렇게 투정부리는 것이 예뻐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인이 그렇다면 곤란합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멘 군인이 피부가 탈까 곤혹스러워한다면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이 거센 영적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념 논쟁으로 혼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로 무장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책을 우리 말 성경에는 ‘민수기’라고 번역했습니다. 백성들의 숫자를 센 책이라는 뜻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민수기는 1장을 시작하자마자 인구조사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가만히 놀고 있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싸움입니다.
이태곤 목사(당진중앙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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