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5) 언니를 찾습니다… 시인 이영주

Է:2012-07-2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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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5) 언니를 찾습니다… 시인 이영주

드라마 ‘추노’가 방영되던 2010년, 등장인물들의 초콜릿 복근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추노패들이 남자 손윗사람들을 ‘언니’라고 부른 호칭이 그것이다. ‘언니’는 동성의 손위 형제를 부르는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유학자들이 한글을 암글, 언문 등으로 비하하면서 신분 낮은 하층 계급 또는 자매들 사이에서 쓰이는 호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어머니, 아버지, 누이, 오빠, 형 등은 많이 다뤄져 왔으나 유독 ‘언니’라는 말은 문학적으로 거의 비어 있었다.

이 ‘언니’를 호출해 그 본질 속으로 과감히 파고 든 시인이 이영주(38)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언니’는 자매로서의 언니가 아닌, 자기 안의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그 은밀한 내부를 뜻한다. 자신의 비밀을 나누고 싶은, 세상에서 딱 한 사람이 바로 언니이다.

“겨울밤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서 안으로, 아무도 없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차가운 칼날 같은 손잡이를 떼 낸다. 손잡이가 있으면 한 번쯤 돌려 보고 배꼽을 눌러 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볼 수 있을 텐데. (중략) 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바깥에 두고 온 손잡이를 어두워서 찾지 못할 때, 아무도 없는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질 때, 너는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언니에게’ 부분)

자신 비밀을 나누고 싶은 단 한 사람 ‘언니’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은밀한 내부 뜻해


이영주는 한때 서울 합정동의 다세대주택 202호에 살았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와 문 앞에 섰을 때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멍해진 채로 추위에 떨며 서 있었다고 한다. 그 느낌을 간직한 채 시를 쓰긴 했지만 사실 이영주에게는 언니가 없다. 무남독녀다. 아빠와 엄마와 딸. 단출한 세 명의 가족 구성원에서 유일한 여성 파트너는 엄마뿐이었지만 엄마는 엄마일 뿐 언니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를 갖고 싶었다. 무남독녀였기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지만 성장하면서 그에겐 언니의 부재가 일종의 결핍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서울 무학여고에 다닐 때 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각종 백일장에 나가 적지 않은 상을 탄 문학소녀였다. 정한아 시인이 1년 후배이다. 하지만 언니의 부재는 중·고교 때 학급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에 장애물이었다.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습관 때문이다. 반면 한 번 친구를 사귀면 완급조절이 안될 정도로 상대방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곤 했는데, 상대방은 정작 이런 인파이터 친구를 부담스러워 했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물리적 구조로서의 방을 뛰어넘어 감성적 공간으로서 화자의 내면 의식을 반영한다. 언니라는 내부가 있었다면, 언니라는 손잡이가 있었다면, 시의 화자는 언니를 호출해 얼마든지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언니는 없다. 그래서 성에 낀 202호 창문이 언니가 된다.

시적 대상을 파고드는 집요함이 언니를 탄생시킨 것이다. ‘나’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언니’라는 존재는 우리들의 가장 뜨겁고 은밀한 안쪽이기도 하다. ‘언니’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시인의 내면 풍경은 외부로부터 내부를 사유하며, 내부로부터 외부를 꿈꾸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이영주는 자아와 동일화된 무수한 타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보여준다.

“엄마는 내 머리를 빗겼다 벌레를 잡을 때는 석유를 발랐다 나는 천정과 벽 틈으로 굴러다녔다 (중략) 아이들은 잘 벗겨진 머리 가죽을 들고 열심히 달렸다 온몸에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저녁 끝까지 교실 안에 남아 있는 시간 새벽은 그 순간부터 멈춰 있다 새벽 이후를 상상하는 것으로 나는 모든 계절을 보냈다 머리에서 잘 떼 낸 새카만 머리 가죽을 손에 들고”(‘조회시간’ 부분)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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