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애란 (13) ‘웬수’ 같은 출신성분!… 첫사랑마저 산산히 조각내
수학여행 뒤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여행기간 만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 보낸 편지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그리고 헤어지던 날의 섭섭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당시 내 나이 만 18세에 불과했다. 또 학생이 이런 감정을 고백 받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반면 그는 나이가 많아 빨리 결혼을 해야 했다. 사람됨이나 나를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당장 결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남의 혼기를 늦추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어머니에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연애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또 여자의 행실에 대해 교육받곤 했다. 고민 끝에 결혼 못할 사정과 생각, 감정 등을 적어 회신을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듬해 겨울방학이 됐다. 전보 한 통이 날아왔다. 그가 내가 있는 혜산에 다니러 온다는 것이었다. 떨렸다. 하지만 묘하고 야릇한 행복감에 젖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온 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마중을 나갔고 역전 대합실에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의자에 마주앉아 두 손을 붙잡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갑자기 그 남자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눈 내리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추운 줄도 몰랐다. 함박눈이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아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는 혜명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당장 어머니한테 찾아가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하겠다고 하는 것을 아직은 안 된다고 사정을 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에요. 나이도 만 19세밖에 안돼 지금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리예요. 1년만 지나면 졸업이니 그때 결혼하겠다고 해야지 지금은 안 됩니다.”
그도 내 말에 공감하는지 “그렇긴 하다”면서 “그러면 마음이 그동안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사랑에 대해, 서로의 꿈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는 우리 사랑을 질투라도 하듯 점점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사랑의 불꽃은 그럴수록 더욱더 활활 타올랐다. 많이 행복했다. 외딴 섬에 보내진다고 해도 이 남자와 함께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김일성종합대학이면 북한에서 가장 우수한 재원들이 가는 대학이다. 또 군복무까지 마치고 입학한 간부의 징표를 확실히 갖춘 그가 천리길을 와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내겐 큰 기쁨이었다.
며칠 밤을 새며 털실로 뜬 장갑을 그에게 선물했다. 검정색 바탕에 흰 실로 북한에서 유행하는 말인 ‘일편단심’이라는 글귀를 수놓았다. 바닥에는 눈꽃무늬를 새겼다. 장갑은 그의 손에 꼭 맞았다. 그는 장갑 낀 손을 볼에 대 보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애란이, 우리 일편단심으로 이렇게 살자. 이렇게… 사랑해.” 시간이 여기서 멈춰버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사랑의 열정도 녹이지 못하는 장벽이 있었다. 그것은 출신성분이란 벽이었다. 그동안 내 출신 성분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확인하기엔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 집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이글거리며 타오르던 그의 눈은 갑자기 광채를 잃었다. 얼마 우리 관계는 어이없이 끝났다. 나는 이 일로 또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웬수’ 같은 출신성분의 늪…. 지금도 가슴 한쪽에 첫사랑의 파편 조각이 남아있다. 첫사랑을 생각하면 왠지 쓸쓸한 웃음이 나온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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