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올림픽 운동 2788년의 진화

Է:2012-07-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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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서완석] 올림픽 운동 2788년의 진화

“올림픽에서 여자의 역할은 고대올림픽처럼 승리자에게 왕관을 날라 주는 일”이라고 여성 비하적 발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근대올림픽 재건자 피에르 쿠베르탱이었다.

고대올림픽 재현에 일생을 바쳤던 그로서는 여성의 올림픽 참여가 금지됐던 고대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보수적 생각과 달리 근대올림픽은 1900년 2회 파리대회부터 여성에게 조금씩 문호를 개방했다. 산업화된 그 어떤 국가에서도 여성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이처럼 올림픽운동은 오래전부터 그 시대의 요구에 맞춰 진화를 거듭해왔다. BC 776년에 시작된 고대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올림픽은 초기 그리스 상류층에게만 허용된 근엄한 축전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에게 영광을 바치는 제전이었다.

知性과 함께 진화한 올림픽

하지만 수많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올림픽과 유사한 경기가 펼쳐지면서 고대올림픽은 지경을 넓혀갔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참가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직업선수들의 출전도 허용됐다. 또 후대로 갈수록 속국의 하류층 계급까지 참가하는 대회로 영역이 확대됐다. 억압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했던 그리스의 자유정신이 올림픽과 더불어 싹트고 꽃을 피웠다. 특히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은 그리스 교육철학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현대 교육철학의 근간이 됐음은 물론이다.

1896년 쿠베르탱이 근대올림픽을 재건할 때의 이상은 고대올림픽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 더 흐른 뒤 재건된 근대올림픽 운동은 이전과는 또 다른 가치의 진화를 요구했다. 진화는 사회·문화적 도전에 대한 응전이기도 했다. 진화는 정치에서 비롯됐거나 부정과 부패에 맞선 것도 있다. 또 약물사용에 대한 응전도 있고, 여성의 기회 확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가장 상징적인 진화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당시 벨기에 출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앙리 드 바이예-라투르 위원장이 히틀러와 나눈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바이예-라투르 위원장은 전 경기장 화장실에 적힌 ‘유대인과 개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치워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히틀러가 거절하자 이같이 말했다.

“올림픽기가 스타디움에서 펄럭이고 있을 때 그곳은 더 이상 독일이 아닙니다. 그곳은 올림피아이고 여기서는 우리가 주인입니다.”

비록 올림픽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이 아닐지라도 올림픽을 정치로부터 수호하려는 노력은 올림픽 운동의 영원한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부패와 맞선 노력은 반대로 올림픽의 수호자인 IOC 위원 자신들이 부정직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검열에서 시작됐다.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 유치위원들이 IOC 위원 여러 명에게 뇌물을 준 것이 밝혀진 것이다.

런던서 첫 兩性平等 꽃 피워

그때부터 IOC 위원들의 윤리적 처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IOC는 또 한번 고비를 넘겼다. 선수들의 윤리적인 측면도 도마위에 올랐다.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에 이기기 위한 약물 사용이 오랫동안 행해져 온 데 대해 IOC는 강경 대처로 맞서왔다.

올림픽 운동의 최신의 진화는 양성 평등의 실현이다. 금녀의 원칙을 유지하던 복싱이 여자 종목을 추가하면서 런던 올림픽에는 모든 종목에 여성이 출전하게 됐다. 또 카타르,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여성을 출전시키면서 이번 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완전한 양성평등을 실현하게 됐다. 남성의 전유물로 출발했던 올림픽이 진화를 거듭, 출범 2788년 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셈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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