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한국교회의 융합을 다시 꿈꾸다

Է:2012-07-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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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칼럼] 한국교회의 융합을 다시 꿈꾸다

피카소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버려진 고물 자전거를 보고 갑자기 황소의 얼굴과 뿔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자전거의 낡은 안장과 손잡이를 분해하여 서로 붙였더니, 그 안장은 소의 얼굴이 되고 손잡이는 뿔이 되어 ‘황소머리’(1943)라는 걸작이 태어났다. 자전거의 안장과 손잡이는 모양과 기능이 전혀 다르지만, 피카소의 손에 들어가자 둘이 어우러져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품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시대의 초창기에 타이프라이터를 대체할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다가, 당시 유행하던 사각형의 둔탁한 상자 같은 컴퓨터를 부드러운 선으로 바꾸고 거기에다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은 로고를 붙여 첫 애플을 만들었다(1984년 1월). 그의 애플은 이제 온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맥의 세기를 열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부처를 텔레비전의 브라운관 안에 담아내고, 그 TV 안의 부처를 마주 바라보는 부처를 밖에 설치한 ‘티비 부처’(1974)를 만들어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피카소의 ‘황소머리’와 잡스의 ‘애플’, 백남준의 ‘티비부처’는 우리가 융합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탁월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각각 예술과 경제와 종교에서 융합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인류의 역사를 생업과 산업의 방식에 따라 유목시대, 농경시대, 산업시대, 정보시대로 크게 구분해 본다면 유목시대로부터 산업시대까지는 모든 기술과 지식이 분화되고 전문화 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정보시대에는 그동안 인류가 축적한 지식, 기술, 산업, 예술, 사상과 종교가 서로 융합되면서 디지털 문명을 창조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융합이란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막힌 담을 허물고 서로 합해질 수 없는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엡 2:14∼15). 이런 점에서 융합은 개체들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서로 뒤섞이는 ‘혼합’이 아니며, 통일성이 없이 이리저리 모이는 ‘합동’도 아니며,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든 것이 환원이 되는 ‘통합’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융합은 바로 창조 질서이다. 모든 생명체는 신비로운 융합을 통하여 건강한 종족을 이루어 간다. 꽃 한 송이가 피려고 해도 벌과 나비들이 여러 꽃가루들을 묻혀줄 때 병약하지 않고 건강하게 피어난다. ‘하나의 씨앗’은 ‘땅’과 융합할 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요 12:24).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부모를 떠나 서로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창 2:24). 결혼하는 두 남녀는 성도 이름도 다르고 배경과 개성과 가치와 취미가 다르지만, 사랑과 헌신으로 잘 어우러지면 최고의 걸작품이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인류가 고안한 가장 ‘악한 형벌’이 융합을 이룬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는 연합이나 융합보다는 분열의 에너지로 살고 있는 모습이다. 남북은 크고 작은 전쟁까지 불사하며 분단의 역사를 60여년 이어왔지만, 남한은 특이하게도 비약적으로 국력을 신장시켜 왔다. 교회도 수백개의 교파로 분열되면서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 왔다. 어찌 보면 분열의 에너지도 핵분열의 힘처럼 강력하며, 미움의 에너지도 사랑의 에너지 못지않게 강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남북 분단의 대가로 핵의 위협까지 당하고 있으며, 교회는 분열과 개교회주의의 대가로 회복이 힘든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문명사의 전환점에서 다시 융합의 세계를 꿈꾸어야겠다. 사실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결정적인 융합을 이루어 내었다. 그때 말씀과 성령이 융합했고, 회개와 화해가 융합했다. 그날에는 남자와 여자, 양반과 상놈, 주인과 종, 동과 서, 남과 북, 그리고 민족과 세계가 하나 되는 통전적인 융합을 이루었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이루어진 융합의 모델을 본받아 사상적으로는 보수와 진보, 경제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회적으로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신학적으로는 칼뱅의 신학과 웨슬리의 실천, 신앙적으로는 복음적인 고백과 윤리적인 실천이 아름다운 융합을 이루는 한국교회가 다시 태어나길 꿈꾼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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