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조명숙 교감 “어려우니깐 내 일이다”
[미션라이프] 탈북민을 위해 죽을 고비를 넘고, 20여 년간 그들을 변호해 온 조명숙(42·여) 여명학교 교감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다. 평소에 농담을 즐긴다는 그는 베트남 국경지대에서 잡혀 능욕을 당할 뻔 했던 상황을 ‘얼굴이 예뻐서 걱정이었다’며 웃으면서 설명했고 탤런트 차인표씨를 한동안 어려워했던 이유로 ‘너무 잘생겨서’라고 할 만큼 낙천적으로 대답했다.
16일 서울 남산동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의 표정에도 어두운 곳이 없어보였다. ‘감당해야 할 무게만큼 이들이 어둡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폭 좁은 건물. 탈북민 60여명의 꿈이 자라는 여명학교가 있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학력이 인정되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다. 그간 북한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회적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올해 초 탈북자 북송문제부터 최근 불거진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는 변절자’ 발언까지 북한 관련 현안이 발생할때마다 언론은 습관처럼 여명학교 학생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때문에 학생들은 좋든 싫든 남한과 북한 사이의 경계인(境界人)으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조 교감과 아이들의 밝은 표정이 의아한 이유다.
어려우니까 내 일이다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를 꿈꾸던 조 교감은 1993년 잘못 걸려온 한통의 운명같은 전화로 평생의 진로를 바꾼다. 인권센터인 줄 알고 전화를 건 파키스탄인에게 조 교감이 “잘 못 걸었다”고 영어로 말하자 “영어를 아는 사람이면 자신을 좀 도와달라”며 산재로 입원한 친구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다.
전화를 받고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를 도운 것을 계기로 계기로 그는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과 2년간 해외에서 탈북민을 남한으로 입국시키는 일을 했다. 이후 그는 99년부터 1년간 경기도 화성의 두레자연고등학교에서 한문교사로 일했고 2003년엔 탈북민 야학인 자유터학교를 운영했다. 현재 교감으로 있는 여명학교는 2004년 개교때부터 몸담고 있다. 23세부터 이 일을 해 왔으니, 20대 청춘과 30대 젊음을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바친 셈이다.
“제가 올해 마흔 두살인데, 그럴 시대가 아닌데도 또래에 비해 이상하게도 가난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막걸리 장사도 해 봤고, 중학교 때 학비 마련하러 공장도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고난을 겪어선지 본능적으로 아픔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도 이유가 됐다. 93년 가족 가운데 처음 신앙을 가졌던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될 때까지, 잘할 때까지 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이주노동자와 탈북민을 위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하나님께서 제게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고민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상처받은 사람을 대하다보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후회도 했지만 오히려 ‘어려우니까 내 일이구나’하고 여기게 됐어요. ‘아무래도 남들보다 고난을 더 받아본 제가 위로를 더 잘 해 줄 수 있겠지’ 하고”
고난과 아픔은 ‘하나님의 학교’
그래서일까. 조 교감은 탈북민의 아픔 역시 민족을 대신해 고난을 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먼저 고난을 받은 이들이 통일 이후 재건 및 남북 화합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독이 일방적으로 동독을 지원하는 형태의 통일은 남북한 서로에게 또 다른 비극을 안길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 남한의 성공적 정착을 넘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탈북민이 통일 이후 북한을 재건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그는 이것이 통일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조 교감은 학생들에게 신앙과 인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탈북과정에서 당한 학대, 국가를 버렸다는 죄책감 등으로 신음하는 아이를 변화시키는데 있어 신앙과 인성교육만큼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당과 체제를 유지하는 혁명가 계급’이 목적이라고 배웠던 이들에게 남한처럼 꿈이나 자아실현을 목표로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은 안 변할 것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철진(21·가명)이가 그 대표적 예다. 성장기에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150cm에 성장이 멈춘 철진이는 키로 인한 마음의 상처로 모든 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누군가 그를 보고 귀엽다고 할라치면 ‘내가 왜 귀엽냐’며 반항하기 일쑤였다. 그는 ‘사랑한다’는 말에도 공격적으로 대응했고 미술치료를 받을 때도 총을 그리며 ‘키 작은 게 내 탓인가’ ‘다 쏴죽이겠다’는 말을 되뇌곤 했다.
철진이를 바꾼 건 교사들의 사랑과 기도였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던 그는 교사들이 보이는 호의의 목적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목적은 없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에 빚져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뿐. 이후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귀엽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답하고 감정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이제는 복지관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랑은 받은 만큼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을 이 학교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통일은 도둑처럼 이뤄질 것
탈북민 지원활동을 해 온 지 16년, 그는 통일을 어떻게 볼까. 이미 통일은 시작됐다는 게 조 교감의 지론이다. 그는 북한의 사회변화를 실례로 들었다. 장마당에서 남한의 생필품을 구할 수 있게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원한다면 가족과 통화할 수도 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 특성상 상상 불가의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됐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조 교감은 소수이긴 하지만 3대째 신앙을 이어 온 지하교인이 있고, ‘고난의 행군’ 이후 점차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가 이를 확신하게 된 계기는 2002년 일기장을 가지고 탈북한 60대 할머니를 만나고부터. 나이보다 20살을 더 늙어 보이는 할머니는 조 교감에게 갱지에 쓴 일기장을 건넸다. 7~8년간 쓴 자신의 기록을 보존키 위해 할머니는 허벅지에 갱지로 된 일기장을 묶고 강을 건넜다. 신앙고백을 담은 일기가 발각되면 일행 모두가 위험하기에 아들과 브로커는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목숨을 걸고 가져 온 일기엔 94년부터 친구로부터 소개 받은 천주님(하나님)에 대한 간증이 적혀있었다.
“저도 그 전까진 지하교회는 구조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할머니 만나면서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틀로 규격화해선 안 된다’라고요. 대북관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선 이미 남북통일을 정하셨고 일을 급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모를 뿐이죠.”
유명세, 그 후
여명학교는 올해 2월 차인표, 이성미, 소이 등 연예인들과 함께 탈북자 북송반대 기자회견 이후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탔다. 예전보다 돕는 손길이 늘어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조 교감은 도리어 후원이 줄었다고 했다. 이사로 있는 교회 후원은 줄고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못 받아 ‘후원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보건복지부에서 교육기관에 대납을 해 주지만, 탈북청소년들은 통일부에서 학비 면제대상이라 지급될 학비가 없어요. 교회 후원도 많이 줄었어요. 아마 2010년 학력인가를 받은 이후로 재정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지요.”
그럼에도 조 교감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꾸준히 돕는 이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했다. 학생들의 평가처럼 혹시 그는 ‘면(발)이 넓고 아는 사람이 많아’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하나님께서 제게 마음이 맞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고 기운을 얻곤 해요.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님과 차인표씨가 대표적인 분들이죠. 나이 상관없이 멘토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초·중·고 통합과정에 일과 후 평생교육시설로 사용되고 일요일엔 교회로 쓰는 ‘도시형 대안학교’를 완성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통일 시대를 대비한 도시형 탈북청소년학교의 롤모델을 한국교회와 함께 세우고 싶어요. 교회 연합으로 운영하는 것은 지금도 힘들지만 끝까지 도전해 보려고 해요. 그래야 한국교회가 민족을 위해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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