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은퇴, 베이비부머의 미래] 은행에 손벌리는 실버푸어… ‘빚’나는 노년 슬픈 자화상
2012년 대한민국의 노년은 서글프다. 한국전쟁의 상흔(傷痕)을 딛고 두 차례 석유파동과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하며 경제신화를 이룩한 그들. 그러나 그들 다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하우스 푸어’, ‘실버 푸어’ 등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인생의 전리품이었던 집은 부동산 시장 폭락으로 인해 처분하기도 어려운 애물단지가 됐다. 그들은 오늘도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문턱을 드나들고 있다.
“50평짜리 감옥에 삽니다.”
1995년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의 전용면적 132㎡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정모(65)씨는 20일 자신의 집을 ‘감옥’이라 표현했다. 처음부터 감옥은 아니었다. 대기업에 다니며 이 집을 장만했을 때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었다. 두 딸을 대학에 보낸 후 가장 각광받던 신도시 1세대로 마련했던 이 집은 그가 이뤄낸 인생의 가장 큰 ‘트로피’였다. 정씨는 “일산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부푼 꿈을 안고 집을 분양받아 들어갔다”면서 “빚 없이 집을 사면서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생직장이라 생각했던 대기업을 은퇴한 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또래 은퇴자들이 그렇듯 변변한 연금 하나 없을 정도로 노후 대비를 하지 못했다. 퇴직금을 털어 동업자와 시작한 레스토랑은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하나 남은 자산인 집을 내놓았지만 10억원에 달하던 집값이 절반 가까이 내려도 구매자는 없었다. 월 50만원에 육박하는 관리비는 가뜩이나 현금자산이 없는 그의 가계를 옥죄었다. 은퇴한 노년의 부부가 재취업을 꿈꾸는 것도 ‘언감생심’이었다.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역모기지론)을 받으려 했지만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 가능성이 발목을 잡았다. 재건축이 되면 건물이 철거되기 때문에 그동안 받은 연금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 그 전에 이사를 하려 해도 전세를 얻으면 주택연금을 받을 수 없고, 집을 사기에는 여력이 없다. 집을 줄이려던 그의 계획은 3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초 만든 3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 잔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지금 정씨의 가장 큰 현금 수입은 두 딸이 주는 용돈뿐이다. 그는 “내 인생의 트로피가 이젠 짐이 되고 있다”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빚 없이 집을 산 정씨 상황은 나은 편이다.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산 뒤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를 비롯해 50세 이상 고령자들의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50∼6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21.2%에서 지난해 29.7%로 상승했다. 60대 이상의 비중도 같은 기간 12.0%에서 16.7%로 늘었다. 특히 이들의 가계대출 비중은 인구고령화 속도의 배 가까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같은 기간 50∼60대 인구 증가율은 4.4% 포인트, 60대 인구 증가율은 3.6% 포인트에 그쳤지만 가계대출 비중 증가율은 각각 8.5% 포인트와 4.7% 포인트를 기록했다.
은행권보다 비은행권 대출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은퇴자들의 금융안정성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50∼60대의 은행권 대출 비중이 20.4%에서 28.1%로 오른 반면 비은행권 대출 비중은 22.8%에서 32.4%로 훌쩍 뛰었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전환대출 역시 50대 이상의 수요가 치솟았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 이용자 가운데 50대는 1400명(14%), 60대는 110명(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에는 50대 1만5561명(14.3%), 60대 1820명(1.7%)을 기록했다.
한은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자) 창업 증가를 꼽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던 2005∼2007년 사이 고가 주택담보대출의 53.5%를 50세 이상이 차지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집값이 폭락하면서 이들 중 대부분은 주택 처분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5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도 2008년 47.1%에서 지난해 53.9%로 늘어났다. 50세 이상 부채 보유 가구 가운데 은퇴 가구주의 연평균 소득은 2476만원으로 은퇴하지 않은 가구의 평균 소득(4848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은 관계자는 “소득 창출 능력이 없는 고연령 대출자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계대출 부실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이경원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