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야기] ③ 올림피아 우승자 특급 대우
고대 그리스 도시축제 중 으뜸이던 올림피아에서는 우승자에게 올리브관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스포츠 보다 종교의식이 더 강조되던 올림피아 초기, 그리스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경쟁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마추어리즘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우승자에게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올림피아를 떠나 고향에 돌아오면 얘기가 달라졌다. 우승자가 배출된 도시도 함께 영광을 누렸기 때문에 우승자에 대한 보상을 아끼지 않았다. 챔피언이 고향에 돌아오면 또 다시 시상식을 갖고 성대한 개선식을 치렀다. 관중들은 우승자에게 꽃과 나뭇잎을 뿌렸다. 4두 마차에 서서 입장하는 챔피언을 위해 성벽을 허물기도 했다. 우승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그 도시에 들어오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승자에게 주는 특권과 대우는 도시마다 달랐다. 아테네는 귀빈관에서 평생 무료 식사가 제공됐다. 또 그 도시의 귀족과 같은 반열로 대우했고 일반 시민과 구별했다. BC 6세기 경 아테네는 올림피아 우승자에게는 500드라크마, 지방경기 우승자에겐 100드라크마의 포상금을 주는 것을 아예 명문화했다. 1드라크마는 양 한 마리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올림피아 우승자는 단숨에 부유층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보다 더 많은 상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BC 5세기 중엽에는 평생 면세혜택도 주어졌다.
스파르타에서는 전쟁시 왕의 곁에서 싸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출신 도시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시민권과 명예 평의회 의원직을 주기도 했다. 또한 공직이 주어지기도 했다. 올림피아 우승자는 식민지 장군이나 지휘관으로도 임명돼 수많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신성한 축제라던 올림피아에서 우승자에게 엄청난 포상이 주어지면서 프로선수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됐다. 프로선수에게 빗장을 푼 현대 올림픽과 흡사하다. 올림피아가 성공을 거두자 이를 모방한 경기가 수많은 지역에서 열렸다. 도시들은 우수선수를 유치하기 위해 더욱 많은 상금을 내걸게 되고 이를 노린 직업선수가 등장하게 됐다. 그리스 자유인 가운데 상류층의 경기이던 올림피아가 외국인은 물론 하류계급에게까지 개방되기에 이르렀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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