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조선 여성 詩心… 가족애를 노래했다
여성한시선집/강혜선 옮김/문학동네
조선시대, 여성의 소외는 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시 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였다. 사대부 전유물인 한시 창작에 치마 두른 여성이 손을 대는 건 자연스럽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시대 통념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조차 “부녀자야 한문 기본 독해력이나 갖추고 족보, 역대 국호, 성현 이름 정도나 알면 그만이지 함부로 시를 지을 일이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
용감한 여성들은 시대의 금기에 도전했다. 예컨대, 조선 후기 옥천 군수 이봉의 서녀 이옥봉은 어려서부터 길쌈, 바느질 등 집안일은 안중에 없었다. 대신 글 공부와 시 짓기에 몰두했다. 한시에 삶과 사랑, 일상사를 담아냈다. 저자 강혜선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조선 여성들이 남긴 한시 작품들을 역대 중요 시선집에서 골라 정갈한 언어로 옮겼다.
어떤 여성들이 한시를 지었을까. 조선 전기 황진이를 비롯한 몇몇 기생,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같은 명문 선비 집안 여성 문인이 출현하면서 여성의 한시 창작이 본격화됐다. 후기에 이르면 여성 한시 작가가 늘어 한시는 더 이상 남성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책은 한시를 주제별로 소개한다. 1부에선 사랑 노래를, 2·3부에선 아내 어머니 딸로 살며 일상에서 건진 시심(詩心)을, 4·5부에서는 사대부처럼 자연을 벗 삼거나 책 읽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를 묶었다. 6부에는 조선 땅에서 여성으로 살며 겪을 수밖에 없는 고된 인생살이를 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우리 한시사에서 사랑을 소재로 한 남성 시인들의 시는 드물다. 하지만 여성 시인들은 당당히 자신의 사랑을 노래한다. “이 몸이 얼마나 그리는지 알고 싶거든/ 금가락지 얼마나 헐거워졌는지 보세요”(‘규방의 원망’ 일부, 17쪽)
시문집 ‘매창집’을 남길 정도로 한시를 즐겨 지었던 부안 기녀 이매창의 시다. 이 신선한 표현을 보라. 사랑시 창작자들 중에는 첩도 빠지지 않는다. 뛰어난 재주 탓에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맞게 되는 이옥봉. “요사이 안부는 어떠신지요?/ 창가에 달빛 환할 때 제 한은 깊어만 가요. 만약 꿈속의 넋이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문앞의 돌길은 벌써 모래가 되었을 것을.”(‘자술’ 일부, 31쪽)
이 애정시는 당시 널리 사랑받아 패러디되기도 했다. 19세기 서울에는 첩들의 시모임이 꾸려졌을 정도로 이들 부류는 주요 한시 창작층이 된다.
양반가 여성들도 가세한다. 과거 보러 먼 길 가는 남편을 보내며, 노모를 그리며, 사행을 떠나는 아들에 대한 걱정을 담아, 언니를 시집보내며, 사촌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족애는 이들의 주요 주제였다. 양반가 출신은 대체로 유교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었다.
여성들은 사대부들처럼 자연을 주유하거나 책 읽는 즐거움을 노래할 줄 알았다. 14세에 남장을 하고 우리 땅 곳곳을 돌아보고 금강산까지 올랐던 여성 시인 김금원이 예다. 마을 수령이나 오빠에게 쌀을 꾸고, 돈 벌러 떠나는 남편을 격려하고, 직접 농사를 짓는 등 고단한 삶을 노래한 시에서는 리얼리티가 묻어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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