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석교사의 한숨 “활동 성패, 교장·교감 성향에 달려”
경기도의 수석교사 A씨는 자신의 교직생활 20년을 통틀어 지난 6개월이 가장 비참했다고 말했다. 교장·교감과의 마찰 때문이다. 특히 교감은 A씨의 활동을 사사건건 트집 잡고 망신을 줬다. 심지어 일반 교사들 앞에서 “(수석교사제는) 게으른 교사들이 당국에 로비해서 만들어낸 제도”라며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교수법과 관련된 결재과정을 수석교사→연구부장→교감→교장 순으로 만들어 굴욕감을 줬으며 연구활동비는 일일이 허락받고 쓰도록 했다. A씨는 “교감선생님은 제가 자신의 권위를 침범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라면서 “수석교사 모임에 나가 교장·교감의 지원 속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다”고 말했다.
수석교사들은 현행 수석교사제를 ‘로또’에 비유한다. 어떤 교장·교감을 만나느냐에 따라 수석교사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부천시 심원중학교 김수분 수석교사는 “수석교사는 악역이다. 다른 교사들의 수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존재다. 따라서 권위는 필수다”라고 말했다. A씨와 달리 김 교사는 전폭적인 지원 속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널찍한 수석교사실에서 수업에서 평가까지 대부분의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도 “수석교사는 4년에 한 번 자리를 옮기고 교장·교감이 수석교사 임기 내에 바뀌기도 한다”면서 “교장·교감의 성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담임선생님이 모든 과목을 관장하는 초등학교보다 과목별 전문교사가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국어교과 출신 수석교사가 미술이나 음악 과목의 교수법에 간섭하기도 한다.
수석교사의 역할이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인 데는 모호한 법령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초중등교육법에는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한다’고 돼 있다. ‘학생을 교육한다’는 부분이 수석교사의 직무인 ‘장학’ 부분과 중첩된다. 또 이 법은 수석교사를 일반 교사와 구분했지만, 교육공무원임용령은 같이 취급하고 있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교과부가 교감, 수석교사의 직무와 역할을 구분한 매뉴얼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초등교사 B씨는 “교감의 눈치를 보느라 수석교사의 지침을 따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서 “과도기라서 그런지 학교가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수석교사 70명은 지난 5월 제도 보완을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수석교사의 직무를 명확히 해 달라는 요청을 미온적인 교과부 대신 헌법재판소에 한 것이다.
불안한 수석교사의 지위는 유능한 교사들이 수석교사로 진로를 택하는 데 주저하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역량이 뛰어난 교사들이 수석교사를 외면할 경우 자칫 교장 승진에서 탈락한 교사들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거나 게으른 교사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에 배치된 수석교사는 1147명. ‘1학교 1수석교사’가 정부 방침이므로 앞으로 수석교사가 지금의 10배 가까이 늘어날 예정이다. 수석교사제의 문제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