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유권자 뇌는 ‘정치인의 스토리’를 선택한다
폴리티컬 마인드/조지 레이코프/한울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완승과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연합한 야권의 완패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프레임 이론으로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져 있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눈으로 보면 당시 선거 전면에 등장한 프레임은 새누리당의 ‘말 바꾸기 야당 심판’과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이명박 정권 심판’이었다.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의 프레임이 민주당의 프레임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신경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새누리당의 프레임이 유권자의 뇌에 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더 활성화됐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을까.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은 뇌의 시냅스와 뉴런 그리고 뉴런 사이의 연결로 구성된 회로이다. 그렇기에 다수 대중의 맹목적인 믿음은 일단 뇌에 자리를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선거에서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에게 승리하려면 일단은 보수주의자가 제시하는 프레임의 덫에서 빠져 나와야 하며, 이성과 합리성에만 의존하는 정치가 아니라 도덕성과 감정이입(공감)을 통해 정치적 마음을 구축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사람의 뇌를 통제하는 정치가가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뇌를 장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해답이 ‘서사(narratives)’에 있다면서 2001년 2월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애나 니콜 스미스 사건을 예로 든다. 약물과다복용으로 숨진 애나는 텍사스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스트립걸이 됐고 나중에 모델로 활동했으며 마침내 늙은 억만장자와 결혼했다는 사실로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가 사망하자 CNN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채널들이 그의 인생사를 재구성해 방영했다. ‘죽은’ 애나가 매체를 장악했던 것이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애나 니콜의 삶과 죽음에 대해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반면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남자를 홀려 돈을 우려내는 여자나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유명인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그녀는 단지 유명인이니까 유명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다양한 서사의 좋은 실례였기 때문에 그녀의 삶과 죽음은 아주 많은 사람에게 깊게 각인되었다.”(52쪽)
레이코프는 애나 사건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애나의 인생과 같은 단순한 서사가 결합해 거대하고 복잡한 서사가 될 수 있는 것은 뇌 속의 어떤 작용에 의해서인데, 그는 그것을 ‘신경 결속’이란 말로 풀어낸다. 뉴런들이 연결경로를 따라 뇌의 여러 다른 영역에서 동시에 점화할 때 하나의 서사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 결속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보수주의자들이 오래도록 결집하는 것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권자들은 훌륭한 서사가 있는 정치인을 좋아한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서사는 프레임의 특수한 경우이며 유권자들은 정치인을 서사 복합체에 일치시킴으로써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훌륭한 서사 복합체를 지닌 정치인이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전남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상업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한 청년이 수많은 정치적 역경을 이겨내고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면, 그의 삶은 하나의 멋진 서사가 된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삶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삶 역시 하나의 멋진 서사였다. 다가오는 12월 대선에서도 극적인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 새로운 승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누가 서사를 장악할 것인가. ‘폴리티컬 마인드’는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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