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비밀외교의 유혹

Է:2012-07-0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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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최현수] 비밀외교의 유혹

민주사회에서는 공개 외교가 定石이다

그간의 과정 낱낱이 밝히고 이해 구해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뒤 77년 제럴드 포드 정부의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미 외교정책을 주도했었다. 그는 미국 외교정책이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는 ‘봉쇄(containment)’정책에서 공산주의 국가와의 공존을 추구하는 ‘긴장완화(detente)’정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데탕트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하다.

키신저의 외교 전략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방법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밀리에 추진된 사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중 국교정상화다. 69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71년 7월 키신저가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해 사전 조율한 뒤 7개월 만인 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성사됐다.

키신저는 자신의 책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에서 “공개리에 사절단을 보냈다가는 미국 정부 내에서 복잡한 인허가 절차가 시작될 판이었고 대만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협의를 하자는 요구가 끈덕지게 이어질 게 불을 보듯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외교정책 수행에서) 투명성은 아주 중요한 목표지만 좀더 평화적인 국제 질서를 건설하는 역사적인 기회 또한 너무나 긴요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비밀 외교의 또 다른 사례는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다. 키신저는 이 협상에서 미·소의 공격용 전략미사일 수를 동결시켰다. 당시 그는 주미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 공산당 제1서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직접 상대해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과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조차 진전 사항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정도로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키신저 전 장관만 비밀외교를 즐겨 활용했던 건 아니다. 1662년 프랑스와 영국이 연맹을 맺을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각료들 몰래 영국 국왕 찰스 2세에게 비밀특사를 보내 협상했다. 미국 대법원장 존 제이는 영국 윌리엄 그렌빌 외무장관과 비밀협상을 통해 1794년 ‘제이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제이조약은 미국과 영국 간 영토분쟁 문제를 정리한 조약이다. 1901년 영국 외무장관과 일본 공사는 양국 간 영구조약을 체결할 것을 비밀리에 합의해 이듬해 영·일동맹이 체결되기도 했다.

외교 관계자들이 비밀외교 행위를 하는 것은 효율성 때문이라고 한다. 비밀외교는 관여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의사결정이 빠르다. 드러날 경우 호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협상가들은 더 절박하고 솔직하게 협의하게 된다. 국제정치학자 칼레비 J 홀스티는 그의 책 ‘국제관계론’에서 “비밀외교는 솔직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며 “특정 목표를 달성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비공개적인 교섭이 성공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공개외교가 정석(定石)이다. 단점이 없지는 않다. 국가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불필요한 억측이 난무할 수 있다. 억측이 협상을 지연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담당해 온 정부 관계자들도 이 때문에 비밀외교에 끌렸을 수 있다. 더욱이 국민 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본과의 군사협력 사안이 아닌가. 추진 과정을 공개해 괜스레 반발을 초래할 이유가 없다고 봤을 수 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비밀외교의 유혹은 달콤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정부는 부처 간 책임전가로 볼썽사나운 모습만 노출하고 협정 체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지름길로 가려다 우회로로 들어선 셈인데 이제라도 그간의 과정을 공개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어떨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수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일 수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chs202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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