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장일준] 걷기 편한 도시를 위한 제언
“보행안전법 정착돼야 부모와 아이들이 자동차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
요즘 ‘걷기’가 그야말로 대세다. 퇴근 후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전국의 올레길, 둘레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막상 가까운 곳까지 걸어가기 위해 거리로 나서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분별하게 세워진 각종 상업광고물부터 울퉁불퉁하고 중간중간 끊어진 보도까지 걷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종로나 강남대로, 하천 주변처럼 걷기 좋게 정비된 곳도 많지만 도심에서 걷는다는 것은 아직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현실이 앞으로는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지난 2월에 제정된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8월 23일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차량 위주로 설계된 우리나라 생활환경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의 ‘보행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방법들을 담고 있다.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걷는 것’이 교통법규나 다른 법률을 잘 지키면 부수적으로 생기는 소극적인 권리가 아니라 정부에 대해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자동차 중심의 정책으로 일관되어 왔다. 관련 규정들도 모두 도로교통 관련 법령에 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동선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도를 차지하는 불법 적치물을 치우고, 단절된 보도를 잇고, 차도와 구분된 보도를 만들거나 보도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조치들의 한계는 정돈된 그 길을 벗어나면 또다시 차량에 휩싸여 위험을 감수하며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이동하는 보행을 단선적인 ‘길’ 차원에서 보도를 개선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시민들의 생활패턴, 주변의 교통흐름과 상권, 지역의 특색까지 보행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요인들을 입체적으로 고려한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보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이번에 제정된 보행법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행환경개선지구를 지정하여 조성’할 수 있도록 ‘존(Zone)’ 개념을 도입하고 있어 앞으로는 위험한 보행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보행법이 정착되려면 첫째, 관련 법령에서 모순된 부분을 정비해야 한다. 일례로 도로교통법은 육교나 지하도가 있는 경우 200m 이내에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전형적으로 차량만을 생각한 규정이다. 필요한 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든 보행자를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둘째, 보행자를 존중하고 우선시하는 교통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으면 우리는 어느새 자동차와 한 몸이 되어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내가 탄 차의 앞길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 서면 차가 멈추지 않아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선진국처럼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때’뿐만 아니라 ‘건너려고 할 때’에도 차량이 정지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안전하고 편안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보행정책을 수립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보행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 입장에서 지원의 핵심은 예산일 것이다. 어려운 지방재정 여건 하에서 국비 지원이 없는 사업은 계획서에만 남는 유령 정책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우리 모두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탄생한 보행법이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지는 일이 없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시행을 앞둔 보행법이 정착되어 우리의 부모님과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환경과 보행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장일준 가천대 교수 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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