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恨 담은 계곡, 초록빛 수채화로 물들다… 지리산 자락 남원 뱀사골계곡

Է:2012-06-2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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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恨 담은 계곡, 초록빛 수채화로 물들다… 지리산 자락 남원 뱀사골계곡

생전에 지리산을 7번이나 오른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해 지리산 유람록을 남긴 조선시대의 수많은 선비들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지리산 계곡이 있다. 지금은 해발 800m까지 찻길이 뚫렸지만 조선시대에는 계곡 초입까지 입산하는 것도 여간 힘든 노정이 아니었다. 지리산 능선이 품고 있는 수많은 골짜기 중 조선시대까지 전인미답으로 남아 있던 곳은 빨치산과 토벌대가 숨바꼭질을 하던 전북 남원의 뱀사골계곡이다.

유월의 지리산은 산도 초록색이고 물도 초록빛이다. 반야봉 삼도봉 명선봉 줄기의 원시림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구절양장 계곡을 흐르다 크고 작은 소(沼)와 담(潭), 그리고 폭포를 잉태하는 뱀사골계곡은 지리산을 대표하는 골짜기로 계곡미가 아름답다. 계곡과 나란히 걷는 등산로도 유순해 한여름에는 등산이나 탁족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뜻의 뱀사골에는 이무기의 전설이 전해온다. 매년 제물로 바쳐진 송림사의 스님을 잡아먹던 이무기가 어느 날 옷에 비상을 바른 스님을 해치려다 죽어 뱀사골이 됐다고 한다. 뱀사골 입구의 마을은 신선이 되려다 이무기의 밥이 돼 반 신선밖에 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반선(半仙)으로 불렀다. 전설의 송림사가 있던 곳이 뱀사골탐방안내소이고, 반선은 어느 때부턴가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

뱀사골은 전설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빨치산의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던 뱀사골은 6·25전쟁을 전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흐른 죽음의 계곡이었다. 1949년 반선에서 여순반란사건의 지휘관인 김지회와 홍순석 등이 토벌대에 의해 사살된 후 뱀사골 깊은 계곡은 빨치산의 은신처로 변했다. 이후 뱀사골에서는 토벌대와 빨치산의 쫓고 쫓기는 전투가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보는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뱀사골계곡과 달궁계곡이 만나는 반선교에서 요룡대를 거쳐 뱀사골 정상인 화개재까지는 9.2㎞로 반선교에서 요룡대까지 2㎞ 구간에는 3개의 길이 존재한다. 계곡을 따라가는 왼쪽 등산로는 와운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로 일부 자연관찰로를 제외하고는 폐쇄됐다. 계곡 오른쪽의 나무데크 자연관찰로는 지난해 태풍 무이파가 휩쓸어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와운마을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찻길이 유일한 등산로인 셈이다.

야영장이 위치한 왼쪽 자연관찰로를 10분쯤 걸어가면 갑자기 하늘이 확 트이면서 비취빛의 돌소(돼지소)가 황홀한 모습을 드러낸다. 단풍나무에 둘러싸인 돌소는 멧돼지가 목욕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돌소처럼 맑고 깨끗한 선녀탕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뱀사골계곡에서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반선교에서 시작되는 찻길은 노각나무 등 상록활엽수들이 우거져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숲을 달리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폭포수 소리가 청아한 찻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리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된 산판도로. 일제는 화개재 아래에 위치한 막차까지 길을 내고 무차별적으로 나무들을 벌목했다. ‘막차’는 마차가 다니던 종점이라는 뜻.

길은 와운골과 뱀사골 원류가 합수되는 곳에서 요룡대를 만난다. 요룡대는 30m 높이의 흔들바위로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형상. 요룡대를 굽어보는 와운교를 건너 곧장 도로를 따라가면 하늘 아래 첫 동네인 해발 800m 높이의 와운마을이 지리산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워낙 산세가 험해 지나가던 구름도 누워서 쉬고 간다는 와운마을의 주민은 7가구 19명. 옛날에는 호랑이가 비녀만 남기고 사람을 삼킬 정도로 호환에 시달렸던 마을이다. 1980년대까지 남원 목기와 한봉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와운마을은 요즘 고로쇠 채취와 민박으로 척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가 호랑이 가죽을 얻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포획에 나서면서 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호환은 사라졌지만 와운마을 사람들은 일제의 무리한 공출에 시달렸다. 이어 6·25전쟁을 전후해서는 빨치산과 토벌대 때문에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뱀사골과 와운마을 곳곳에서는 최근까지도 사람의 뼈가 버글버글 할 정도였다고.

와운마을에는 잘 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지리산 천년송으로 불리는 우람한 소나무는 일명 ‘할머니 소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할머니 소나무에서 20m 위쪽에는 체구와 수령이 조금 작은 ‘할아버지 소나무’가 그윽한 눈길로 할머니 소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다.

뱀사골 등산로는 와운교 끝에서 나무계단을 오른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등산로에는 산딸나무 생강나무 물푸레나무 등 활엽수들이 밀림을 이루고, 숲은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습기 머금은 이끼가 잔디밭처럼 펼쳐진다. 대여섯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등산로는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반대편 피아골 등산로가 좁고 경사가 급해 남성적이라면 뱀사골은 여성적이라고나 할까.

요룡대에서 승천하려던 용이 떨어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탁룡소는 뱀사골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 이곳에서 뱀사골 정상인 화개재까지는 뱀이 꿈틀거리는 형상의 뱀소, 병 모양의 병소, 병풍 같은 바위 사이로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흐르는 병풍소 등을 감상하며 오른다.

금포교, 병풍교, 명선교, 옥류교 등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와 철다리를 건너 한참을 오르면 단심폭포로 불리는 제승대를 지나 해발 800m 지점에서 간장소를 만난다. 간장소는 옛날에 보부상들이 경남 하동에서 소금을 운반할 때 지형이 험준해 소금짐이 빠져 간장처럼 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트럭이 다닐 정도로 넓은 뱀사골 등산로는 ‘막차’에서 막을 내린다.

남원=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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