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문신
영화 ‘메멘토’. 만화 주인공 배트맨을 정체성 혼란에 고뇌하는 반영웅으로 그린 ‘다크 나이트’로 거장(巨匠)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출세작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10분 이상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 그래서 수많은 즉석 사진과 메모, 그리고 몸에 새긴 문신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여기서 문신은 ‘기록’이다.
소설 ‘문신의 땅’. 한풀이 과정과 고향찾기를 주 작품세계로 하는 문순태 작가의 1987년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양공주 출신 노마리아는 온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다. 그녀와 관계한 미군 병사들이 남겨놓은 ‘더러운 사랑의 상처’들이다. 여기서 문신은 ‘민족적 아픔’이자 ‘죽음보다 더 더러운 과거의 흔적’이다.
그러나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로부터 비롯돼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문신은 패션이다. 개성의 일부이고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일본의 야쿠자 같은 조직폭력배들이나 하는 게 문신이라는 생각은 구닥다리다. 학생 주부 회사원들이 문신 가게에 넘쳐난다. 서울 경찰청에 따르면 연간 80만명이 문신 시술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문신 아티스트 혹은 타투이스트들의 돈벌이가 쏠쏠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대 젊은이들이 한달에 150만∼200만원의 수강료를 마다 않고 문신 시술을 배운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놀라운 건 우리나라에서 의사 아닌 타투이스트의 문신 시술은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현행법상 문신은 어디까지나 의료행위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만큼 이 규정은 이미 사문화돼있다. 단속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신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는 한국보다 문신에 더 관대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업률이 높은 미국에서 취업을 위해 문신을 지우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최근 외신 보도가 이를 입증한다. 그 중 한 젊은이는 “취업 면접 때마다 문신을 가리느라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는 것도 지쳤다”고 털어놨다거니와 올해 미국의 문신제거 수술은 지난해보다 32% 늘었다. 그 가운데 ‘고용 관련’이 40%로 제거 이유 1위였다.
개성 표현의 자유도 좋고 신체의 자기 결정권도 좋다. 내 몸 내 멋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랴마는 ‘한때의 멋’을 즐기려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고생해 새긴 문신 애써 지우는 것도 아깝지 않은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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