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통일항아리 빚기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달항아리전’을 관람했다. 달항아리들은 참 편안하고 푸근해 보였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이 왜 “마치 인간의 가식 없는 어진 마음 본바탕을 보는 느낌”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뽐내지 않아 포근하고 억지가 없어 너그럽고 모든 것을 비웠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칭찬도 떠올랐다.
그러나 달항아리를 제대로 빚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전시회를 연 박부원 선생은 필자와의 통화에서 “하늘에 뜻을 맡기고 전 과정을 젖 먹을 때의 힘까지도 다 쏟아 붓는 열정과 세심함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금이 가고 모양이 일그러지기 일쑤인 모양이다.
‘달항아리전’을 보러 간 것은 통일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항아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지난 12일 경북 문경에서 통일항아리로 쓰일 달항아리를 빚는 행사를 가졌다. 통일항아리란 어려운 시기에 대비해 옛날 어머니들이 항아리에 쌀을 비축해 놓았던 것처럼 통일에 대비해 계정을 마련하고 여기에 재원을 채워 넣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는 사안이다.
지난해 논란이 일었던 ‘통일세’ 도입을 대신해 진행되고 있다. 통일항아리는 세금이 아니라 남북협력사업을 위해 책정된 남북협력기금 중 쓰지 못하고 있는 돈을 기반으로 정부 출연금과 민간 기부금을 합해 채워나간다는 점이 통일세와 다른 점이다.
이 통일항아리가 제대로 빚어지기 위해서는 남북협력기금법이 개정돼 불용액을 통일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18대 국회에서 퇴짜 맞았다. 남북간 교류협력을 위한 남북협력기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통일계정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남북한 교류협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타당한 지적이다. 독일 통일도 꾸준한 교류협력이 기반이 됐다.
서독은 통일을 위해 오래 준비했다. 독일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서독은 과거사 속죄를 통해 주변의 신뢰를 구축했고 독·미 동맹은 물론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도 관계정상화를 추구했다. 통일해야 한다고 요란하게 떠들지도 않았다. 대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다져 동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교류·협력을 주도했다. 동독체제를 바꾸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접촉을 통한 변화’와 ‘작은 걸음 정책’으로 체제변화에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동독의 자연적 붕괴를 이끌어 냈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후손답게 통일정책도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적 과정을 밟았다.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는 ‘친서방 결속’과 ‘힘의 우위정책’으로 서방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국가적인 힘을 길렀고 이어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구 공산권과의 결속을 도모하는 ‘동방정책’을 펼쳤다. 헬무트 콜 총리는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보다 더 강화하는 정책으로 독일 통일이라는 완성품을 끌어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서독의 ‘모두와의 친구(friendship with all) 정책’ 대신 정권에 따라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친구 쏠림현상’을 보였고 통일정책은 정과 반이 합을 이루기보다는 전 정권의 정책을 뒤집는 반(反)과 반(反)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통일준비는 해야 하고 통일비용 마련은 시급한 사안이다. 하지만 통일정책에 대한 신뢰가 먼저 구축돼야 통일항아리를 채울 국민들의 쌈짓돈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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