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영기 (11) 1000일 작정기도의 응답 “이젠 중국으로 가라”

Է:2012-05-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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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심영기 (11) 1000일 작정기도의 응답 “이젠 중국으로 가라”

내가 정맥류 전문 진료를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정맥류 환자들을 받기 시작하자 주위에선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수익성을 고려할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들의 생각이 맞다. 하지만 나로선 따로 생각이 있었다. 미용성형 계통에선 나 말고도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즐비하지만 정맥류 치료만큼은 내가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다. 첨단 설비를 도입해 시작한 나의 정맥류 진료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과 최선의 시술법을 선택해 치료하기 때문에 재발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 20여 년간 해온 미용성형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술하기 때문에 흉터가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입원할 필요 없이 당일 상담과 치료를 끝낼 수 있고, 부분 마취로 통증 없이 치료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국내 유수의 방송과 신문에서 나의 정맥류 치료법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수익성에서도 괜찮았다. 미용성형을 할 때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어 아침부터 밤늦도록 진료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에는 늘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다.

정맥류 진료를 하면서 나는 유럽의 선진 시술법에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그 노력의 성과가 몇 년 뒤 나타났다. 1999년 9월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세계정맥학회에서 내가 800여명의 석학들 앞에서 한국적 정맥학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회의 좌장으로 뽑힌 것이다. 한국인 환자 1200명을 시술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나의 새로운 치료법에 그들은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혈관 전공이 아닌 성형외과 의사로서 정맥류 치료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세계적인 의사와 학자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는다 싶으니 나 스스로도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평소에도 늘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그때는 참으로 가슴 저리게 감사했다. 나는 호텔에서 매일 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높여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영원히 잊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듬해에는 중국 다롄에 분원을 세웠다. ‘심영기식 정맥류 치료법’의 중국 진출이 이뤄진 것이다. 그 후 베이징에까지 진출했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과 중국에서 3만5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시술, 동양권에서는 단연 최다시술 기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 경험을 토대로 개발한 수술 기구들이 특허청에 등록돼 있기도 하다.

중국 진출의 단초는 96년 가을에 마련됐다. 내가 교회에서 1000일 작정기도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혀가 꼬부라지면서 이상한 방언이 터졌다. 기도를 끝내고 나서 무슨 뜻인지 몰라 평소 기도를 많이 하시는 권사님께 물었다. 그러자 권사님은 “아마 중국에 사명이 있나 보죠?”라는 짤막한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데 그날의 일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면서 중국으로 진출해보라는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뀐 97년 직원 한 명을 시켜 중국 어디에서 병원을 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다롄이었다. 관광산업과 유흥업이 발달된 도시라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됐다. 다롄에 병원을 설립해 중국 진출 가능성을 모색해보자.’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나는 중국 진출 결심을 굳혔다. 그리곤 실무적인 준비에 들어가면서 아내와 함께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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