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철환] 꽃이 말해줄 거야
“포기하지 않고 묻고 또 묻는다면 무엇이든 언젠가는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앞산을 걸을 때마다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 꽃 저 꽃을 가리키며 자꾸만 내게 꽃 이름을 물어왔다. 도깨비엉겅퀴, 고들빼기, 민들레, 은방울꽃……. 내가 아는 꽃 이름은 모두 알려주었다.
졸참나무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강아지풀이 무덕무덕 피어 있었다. 딸아이에게 꽃과 나무 이름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내도 알고 있었던 터라, 아내에게 뽐내고 싶어 딸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풀의 이름이 뭐야? 아빠가 가르쳐줬잖아.” 기억력이 좋은 아이라 거뜬히 맞힐 줄 알았다. 아이는 ‘강아지풀’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멍멍이풀’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킥킥거렸다. 나는 ‘멍멍이풀’이 맞다고 맞장구치며 딸아이를 안아주었다.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강아지는 “멍멍”하고 인사를 할 테니 ‘멍멍이풀’도 맞지 않은가. 산길을 걸으며 딸아이에게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 이름을 가르쳐줄 때마다 아이 마음은 한 뼘씩 자라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산길을 걷다가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그렇게나 많은 꽃 이름을 어떻게 다 외웠어?” 슬며시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외운 거 아냐. 꽃을 자주 바라봐주면 꽃이 자기 이름을 말해주거든.” 아이는 내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꽃이 어떻게 말을 하냐고 다시 내게 물었다. 꽃도 나무도 말을 하고 새들도 말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꽃과 나무와 새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꽃과 나무와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꽃 이름을 알고 싶으면 꽃에게 네 이름이 뭐니? 하고 물어 봐. 그러면 언젠가는 꽃이 자기 이름을 말해 줄 거야.” 아이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한결같이 자기를 바라봐주는 사람에게 꽃은 정말로 자기 이름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내게 이름을 가르쳐준 꽃의 이야기는 이렇다. 유난히 좋아했던 꽃이 있었다. 산길을 지나다가 여러 번 그 꽃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그 꽃 앞에 앉아, “넌 이름이 뭐니?” 하고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 꽃은 하얀색 얼굴만 살랑거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 다른 장소에서도 그 꽃을 만나 아름을 물어본 적이 있지만 그 꽃은 자기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산길을 걷다가 그 꽃 앞에 잠시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다가 그 꽃을 바라보며 “은방울꽃 참 예쁘다”라고 큰소리로 말해주었다. 나는 그때 그 꽃 이름이 은방울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날 그 꽃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 꽃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꽃이 좋아서 자꾸 바라봐주니까, 은방울꽃이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 이름을 말해준 것이다.
조금은 낭만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것이 터무니없는 낭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꽃이 있으면, 그 꽃은 사람을 통해서든, 식물도감을 통해서든, 텔레비전 자연다큐를 통해서든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꽃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꽃 이름을 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꽃 이름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꽃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꽃은 자기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꽃에 관심이 있다 해도 오랫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꽃은 자기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묻고 또 묻는다면, 무엇이든, 언젠가는,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것이다. 우리의 꿈도 그럴 것이고 사랑도 그럴 것이고 일도 그럴 것 같다. 딸아이가 어른이 되면, 꽃 이름을 많이 아는 사람과 결혼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꽃 이름을 많이 안다는 건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철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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