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피어난 꽃, 고요히 아름답습니다… 한국 최고 야생화 군락지 태백 불바래기 능선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불바래기 능선이 하늘문이 열리면서 더욱 화사해졌다.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이자 백두대간 마루금인 불바래기 능선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 불바래기는 불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산 아래에서 불을 놓고 이곳에서 기다리다 맞불을 놓아 산불을 진화했던 곳이다. 두문동재(1268m)의 산불감시초소에서 금대봉(1418m) 입구까지 이어지는 불바래기 능선의 길이는 1.2㎞.
불바래기 능선은 찾아 가는 길부터 황홀하다. 정선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을 향해 달리다 두문동재터널을 앞두고 옛 38번 국도를 타면 몇 차례 S자를 그리는 고갯길이 나온다. 산안개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사라지는 고갯길에는 피부가 하얀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두문동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킨 고려 유신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두문불출하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함백산 은대봉을 뒤로 하고 불바래기 능선에 들어서면 길섶에 뿌리를 내린 야생화들의 은근한 유혹으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한주먹씩 무리지어 해맑은 미소를 흘리는 야생화는 개별꽃, 제비꽃, 미나리아재비, 양지꽃, 산괴불주머니, 얼레지, 바람꽃 등. 요염하고 수수하지만 범접하지 못할 기품을 지닌 야생화들은 5월부터 7월까지 피고지고를 거듭하며 자태를 뽐낸다.
주변이 확 트인 헬기장은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무더기로 피는 꽃밭. 불바래기 능선에는 꽃밭으로 변신한 헬기장이 모두 3개나 있다. 하얀색 작은 꽃이 앙증맞은 개별꽃은 이름에 걸맞게 밤하늘의 별을 닮았다. 다섯 개의 노란 꽃잎이 멋스런 미나리아재비와 양지꽃은 줄기가 아니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60여 종이나 되는 제비꽃도 한주먹씩 피어 숲 속의 요정을 자처한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야생화는 산괴불주머니. 첫 번째 헬기장을 벗어나자 산괴불주머니 군락이 임도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줄기와 가지 끝에 노란색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괴불주머니는 한 무더기씩 군락을 이룬 채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숲에 생명력을 더한다.
불바래기 능선에서는 올해 의미 있는 생태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수목이 울창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능선 서쪽의 숲 500∼600평을 간벌하자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한 해 만에 엄청난 규모의 산괴불주머니 군락이 형성된 것이다. 짙은 산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숲은 불이라도 밝힌 듯 환하다. 간벌로 인해 없던 야생화가 돋아나는 현상을 가리켜 ‘하늘문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금대봉은 불바래기 능선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금대봉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매봉산을 향하고, 야생화 군락지는 금대봉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우암산(1346m)과 분주령을 거쳐 대덕산(1307m)까지 이어진다. 분주령에서 동쪽 하산길을 택하면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태백의 검룡소.
불바래기 능선에서는 이미 지고 없는 얼레지와 현호색이 고도가 높은 금대봉에는 아직도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덕분에 금대봉 숲은 아마존의 밀림이 무색할 정도로 울창하다. 한겨울 거센 바람에 가지는 제멋대로 휘어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산안개와 이슬을 먹고 자란 야생화들의 색은 더욱 선명하다. 곰취를 비롯한 산나물들은 건강한 초록잎으로 야생화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금대봉의 야생화 꽃밭은 군데군데 땅이 심하게 파헤쳐져 있다. 범인은 식물의 뿌리를 먹고 사는 멧돼지들. 방금 꽃밭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발견될 때마다 어두컴컴한 숲에서 녀석들을 만날까봐 모골이 송연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멧돼지가 이렇게 야생화 꽃밭을 헤쳐 놓아야 이듬해 더 많은 꽃이 핀다고 하니 이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숲은 애기똥풀과 피나물 군락으로 한 폭의 점묘화를 그린다. 노란색 꽃잎이 4개인 애기똥풀과 피나물은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이웃사촌. 줄기를 꺾으면 애기똥풀은 노란색 유액이 나오고 피나물은 빨간색 유액이 흘러나와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다.
금대봉에는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노랑무늬붓꽃도 개체수가 늘어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하얀 바탕에 노랑무늬가 선명한 꽃잎은 습기를 머금은 산안개가 한 번 지나가자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진주처럼 영롱하다. 태백바람꽃,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등 바람꽃들도 질세라 청순미를 뽐낸다.
백두대간 능선이 지나는 금대봉을 에둘러 왼쪽 임도로 들어서면 금대봉 분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리는 금대봉 분지는 비밀의 화원으로 불린다. 금대봉 분지는 6∼7월에 범꼬리풀로 뒤덮여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변한다. 금대봉 분지 오른쪽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희귀한 풀꽃이 군락을 이룬 곳.
금대봉 분지에서 고목나무샘과 분주령을 거쳐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탐방로는 5㎞가 넘지만 대부분 내리막길의 연속이라 힘들지 않다. 여기에 우암산과 대덕산을 비롯한 고산준령들이 중중첩첩 포개져 야생화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산불조심 기간이라 출입이 통제됐던 불바래기 야생화 탐방로는 16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태백·정선=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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