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는 아내 지위 상승의 역사… ‘아내의 역사’
아내의 역사/매릴린 옐롬/책과함께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 또는 최악의 재산은 그의 아내이다.” 영국 역사가 토마스 풀러의 말처럼,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과 같이 취급되던 시대가 있었다. ‘깨지기 쉬운 약한 그릇’과도 같았던 아내들은 남편의 보호 아래에서 순종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의 아내들은 더 이상 집안에만 있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갖고 경제 활동에 참여해 남편과 동등한 사회적·경제적 주체가 됐다. 아내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도 있다. 아니, 아내라는 자리가 계속 존재하기는 할까.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미셸 클레이만 젠더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내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하나씩 풀어놓는다.
성경의 ‘창세기’ 속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 동안이나 그녀의 집에서 봉사해야 했다. 처녀라는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자신으로 이전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성경 시대 이후에는 결혼할 때 아내가 지참금을 가지고 가는 풍습으로 변했다. 중세 시대부터는 결혼이 교회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부부의 성생활은 자녀를 출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됐다. “성관계는 부부간의 빚으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은 각각의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진 빚이며 오늘날처럼 자연스럽게 공인된 즐거움이 아닌 엄숙한 의무였다.”(100쪽)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는 사랑이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지만 여전히 혼전 성관계는 금기시됐다. 결혼식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임신 중이었던 여성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하층민이었고 여전히 중상류층 커플들은 성관계를 결혼 뒤로 미뤘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골드러시 바람을 타고 서부로 개척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생존의 위기 속에서 모두가 성별에 상관없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므로 남녀의 전통 영역을 구분하는 이데올로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등장했다. 제3막에서 남편 헬마와 아내 노라는 크게 충돌한다. 헬마는 노라에게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은 아내이자 엄마야”라고 말하자 노라는 “난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야. 당신이 그렇듯이”라고 응수하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앞서 개인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은 아내들에게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였다. 생명의 위협도 있었지만, 전장으로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기혼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전쟁 전 1939년에 조선 산업 전체 피고용자의 경우 겨우 2퍼센트만이 여성이었다. 과감하게 작업장에 나온 여성들은 휘파람과 야유 세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조선소에 많은 여성이 고용되면서 통계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급변했다. 1944년에는 조선소 노동자의 10∼20퍼센트가 여성이었으며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493쪽)
1960년대에는 미국 가정의 아내들 가운데 30%가 일을 했다. 20년이 지난 후 그 비율은 54%로 늘어났다. 1990년대 중반에 60%의 미국 가정이 맞벌이 부부였다. 이제 상황은 역전돼 200만명에 가까운 아버지들이 아내가 일하는 동안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 300만명은 반일 혹은 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본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오늘날 남편에게 의존하고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전통적인 아내상은 더 이상 이상적인 아내상을 대표하지 않는다.”(599쪽) 이호영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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