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라 사공아! 황포돛배타고 그 옛날 시간여행… 역사가 있는 수변관광레저 명소 ‘부여 백마강’

Է:2012-05-0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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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라 사공아! 황포돛배타고 그 옛날 시간여행… 역사가 있는 수변관광레저 명소 ‘부여 백마강’

백제의 고도 충남 부여가 수변관광레저 중심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백제보가 들어서고 황포돛배가 다니던 강바닥을 준설하면서 수심이 깊어진 금강이 카누와 카약 동호인들의 뱃놀이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여군은 수상관광지원단을 만들고 한국관광공사는 수변관광레저 체험행사를 개최하는 등 인프라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따라 1500년 전 백제로 여행을 떠나본다.

‘백제,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신동엽의 장편서사시 ‘금강’ 제23장 중)

썩고 망해서 거름과 정신을 남기는 백제의 금강은 삼천궁녀의 한이 서린 백마강이다. 전북 장수의 뜬봉샘에서 발원해 한반도의 가슴을 서럽게 흐르던 금강은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 백마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백마강은 백제보 아래에 위치한 천정대에서 낙화암과 구드래나루를 거쳐 반조원나루까지 이어지는 약 16㎞ 구간.

백마강은 삼국사기에 백강, 일본서기에 백촌강으로 기록된 금강의 다른 이름이다. 백제의 도읍이 공주에서 부여로 옮겨온 사비시대(서기 538∼660년)에 일본, 신라, 당나라, 서역과 문물교류를 했던 통로로 전북 군산 앞바다를 통해 금강을 거슬러 올라온 황포돛배는 국제무역항인 구드래나루에서 닻을 내렸다.

고란사선착장에서 구드래나루를 거쳐 백제대교 아래 규암선착장까지 약 3㎞ 구간은 황포돛배와 유람선이 다니는 구간.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 카누와 카약을 즐기기에도 좋다. 카누는 외날 노, 카약은 양날 노를 사용하는 작은 보트로 1인용, 2인용, 3인용 등이 있다. 특히 카누와 카약은 30분 정도 노 젓는 방법만 배우면 초보자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수상레포츠.

구드래나루는 카누와 카약의 출발점이자 황포돛배의 출항지. 백마강 서쪽 기슭에 위치한 구드래는 ‘큰나라’라는 뜻으로 백제를 뜻한다. 구드래나루는 1970년대까지 주변에 주막과 기생집이 즐비할 정도로 번성했으나 80년대 초 군산 앞바다에 금강하굿둑이 들어서면서 새우젓배의 통행이 끊겼다. 구드래나루 인근의 구드래조각공원은 잔디밭이 드넓은 녹색공간으로 강바람이 시원하다.

구드래나루에서 출발하는 카누와 카약의 첫 번째 뱃놀이 구간은 부소산의 낙화암 아래에 위치한 백마강. 낙화암은 나당연합군이 침범하던 날 백제의 여인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곳으로 절벽에는 조선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핏빛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백마강은 이곳에서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조용히 흐른다.

백마강 강변은 하이킹을 즐기기에도 좋다. 백제보에서 구드래나루를 거쳐 규암선착장에 이르는 백마강 양쪽의 강변은 금강자전거길이 달리는 구간. 대청댐에서 공주와 부여를 거쳐 금강하굿둑까지 이어지는 146㎞ 길이의 금강자전거길은 부여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백제보에서 휴식을 취한다. 백제보는 백제의 계백장군이 백마강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는 ‘계백위환(階伯衛還)’을 테마로 말을 타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계백장군을 형상화했다.

금강자전거길은 백마강교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백제보에서 곧장 달려온 자전거길은 부소산(106m)을 에둘러 구드래나루로 돌아와 둑길을 달린다. 반면에 백마강교를 건넌 자전거길은 미루나무가 멋스런 강변을 질주하다 부산(106m)을 에둘러 백제대교를 건넌다. 그리고 구드래나루에서 출발한 자전거길과 합류해 버드나무숲이 아름다운 강변을 벗 삼아 논산의 강경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낙화암에서 강물의 흐름을 타고 다시 구드래나루를 거쳐 하류로 내려오던 카누와 카약은 부산의 절벽 앞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풍경화의 주인공이 된다. 부산 절벽 중간쯤의 암벽에 그림처럼 올라선 대재각은 북벌을 주장하다 영의정에서 물러나 낙향한 조선 효종 때의 이경여를 기리는 누각. 비각 안에는 송시열이 이경여의 충심을 기려 썼다는 글이 바위에 새겨져 보호되고 있다.

부산의 대재각 앞에서 주유하던 카누와 카약은 백마강의 마지막 비경인 자온대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젓는다. 백제대교 서쪽 강변에 우뚝 솟은 자온대는 높이 20m의 바위 절벽. 삼국유사는 백제왕이 쉬어갔던 곳으로 왕이 도착하면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 자온대(自溫臺)로 불렀다고 한다. 자온대에는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인조반정을 피해 이곳에 살면서 지었다는 수북정이 짙은 신록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절벽에 새긴 ‘자온대’는 송시열의 글씨.

백제대교 서단에 위치한 자온대와 수북정, 그리고 규암선착장의 황포돛배는 한 폭의 동양화와 다름없다. 절벽에 뿌리를 내린 진달래는 낙화한 백제 여인들의 넋을 상징하듯 더욱 붉고, 신록은 백제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듯 더욱 푸르다. 거울처럼 잔잔한 백마강에 파문을 그리며 달리는 형형색색의 카누와 카약이 자온대에서 동양화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자온대 건너편인 백제대교 동단의 선화공원은 부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 신동엽의 시비가 있는 곳. 썩고 망해서 한 알의 밀알로 태어난 부여의 백마강을 지켜보기라도 하듯 그의 시비에는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로 시작되는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다.

부여=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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