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이정희, 죽어야 산다

Է:2012-05-0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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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박현동] 이정희, 죽어야 산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느슨한 수준의 법적·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범죄행위다”

한 편의 막장드라마다. 감동은커녕 절망만 있다. 상식도 정당성도, 수치심도 없다. 오만, 독선, 비민주, 아집, 집단주의가 번득인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에 굳이 감독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주연은 이정희다. 그는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이 대표는 ‘영혼이 맑은 정치인’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이정희는 진보세력의 ‘희망’이었다. 해맑은 웃음에서, 약하고 낮은 곳을 찾는 발걸음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착하면서 강한 그를 봤다.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에서 때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여기에 화려한 개인적 이력까지 더해지면서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그를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0% 넘는 정당득표를 올렸고, 6명의 비례대표를 배출했다. 진보정당을 수용할 때가 됐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상당수는 이 대표를 보고 찍었을 것이다. 강인하고 냉철한 여전사이지만 눈물 많고 인간적인 모습에서 ‘이정희가 대표라면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관련, “가장 무거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때까진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록 그 방법을 말하지 않아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진보정당이라면, 인간 이정희가 살아온 궤적을 감안한다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설마’라고도 했다. 적어도 진보세력, 특히 이 대표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지만 여기까지다. 우리는 그의 민낯을 봤다. 지금 그는 ‘절망의 정치인’으로 추락했다.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하루 만에 가장 추악한 꼴을 보였다. 이 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라고 결론짓자 “의혹만 있고 합리적 추론은 없다”고 강변했고,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다. 가장 무거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던 약속은 어디 갔는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한 진보주의자, ‘착한’ 이정희가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느슨한 수준의 법적·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는 범죄행위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은 당신이 두렵기까지 하다. 당원의 눈높이와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 눈높이와 행동이 명백히 잘못됐을 때, 그로 인해 진보진영 전체가 위태로울 땐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는 민주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그냥 종파주의자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대표적인 진보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그를 ‘얼굴 마담’으로 깎아내렸을까. 그러고는 “안녕, 이정희씨”라고 작별을 고했다.

NL이니 PD니, 당권파니 비당권파니 하는 정파를 논하기 전에 이번 일은 민주주의 기본에 관한 문제다. 실수, 관리부실로 눙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의민주주의, 특히 선거에서 절차의 정당성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다수결의 원칙 등 민주주의 일반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마저 정당성을 갖진 않는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 것처럼.

회의장엔 욕설과 야유가 난무했고, 밖에선 홍위병들이 위세(威勢)를 떨쳤다. 조폭이 따로 없다. 일사불란한 기립박수, 흐느껴 우는 사람들까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유치찬란하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백보를 양보해도 이성적·합법적 정당의 모습은 아니다. 사교집단(邪敎集團)과 뭐가 다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지지자들이 당신 곁을, 진보정당을 떠나고 있다. 살려고 바둥거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죽어야 산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걸 던져라. 그게 당신을 그토록 사랑해온 지지자들을, 당신이 그토록 사랑해온 진보세력을 위하는 길이자, 최소한의 예의다.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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